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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List

정치혐오와 정면으로 맞서기

by parallax view 2010. 5. 14.
구경꾼에서 선수로
(아이추판다 님 포스팅)

작년 7월경 썼던 원고가 하나 있다. 시민 참여 원고라는 콘셉트로 글을 모아 책으로 나온 것이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김창규 외 25인 글, 소복이 그림 / 느티나무아래, 2010)이다. 지난 3월에 나왔고, 진즉 홍보했으면 더 좋았을 게다. 하지만 당시 조금 지쳐 있었고, 많이 부끄러워서 감히 책 홍보를 하진 못했다. 뒤늦게 글을 여는 건 아이추판다 님이 마침 지방선거 관련해서 추첨제 이야기를 했기 때문. 이 글에서도 기초의원에 추첨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 외의 아이디어는, 솔직히 부끄러울 정도로 단순하다.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정밀함이 필요한 법이다. 그게 부끄러워 도무지 공개하기 꺼렸던가 보다. 그래도 지방선거 국면이니 얼굴이 붉어지는 걸 잠깐 참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 블로그로 옮기는 김에 인용된 매체의 링크를 달았다.
** 띄어쓰기 등 일부 수정했다.
*** 의원추첨제에 대한 내용만 수정,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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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혐오와 정면으로 맞서기


4. 자리 앉길 권하는 의회 : 주민참여제 확대와 의원추첨제

 대의제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시민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면 의미도 없고, ‘과두제의 철칙(어떤 정치체제든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데는 변화가 없다는 주장)’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시작단계에 있긴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정치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가 있고, 주민참여예산조례나 시민배심원제도, 주민발의제, 주민감사청구제와 같은 제법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놓은 상태다.

 곤란한 점은 구청, 시청 등의 지방정부가 이런 시민들의 참여에 별로 협조적이지 않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한 당장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오는 게 아닌 만큼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는 점도 있다. 당위가 현실과 충돌하는 전형적인 사례인데, 여기에는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는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닌 데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참여와 개입을 요구하는, 불편한 삶의 방식이다. 요점은 이렇다. 기왕 불편할 거라면 제대로 불편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시민의 대표자로서 자기 지지자의 이해와 최대한 일치한 상태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듯, 시민들은 국정의 주인으로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추첨(제비뽑기)을 통해 지역주민을 지역의회 의원으로 선출하는 의원추첨제를 시행하는 것은 어떨까.

 이 아이디어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뚜렷했던 통치 방식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추첨제와 관련된 가장 가까운 사례라면 초록정치연대의 당원추첨제 구상인데, 비록 초록정치연대의 활동이 시민운동의 범주에서 머물러 있었다곤 하더라도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실행가능성을 볼 때 의원추첨제는 고려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의 자발성과 높은 교육수준-지역과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지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의원 추첨제 앞에는 많은 난점이 있다. 무엇보다 의심을 받는 것은 추첨으로 선출된 의원의 질이다. 말 그대로 무작위로 뽑는 것이므로 과연 누구에게 맡기더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최고의 걸림돌이다. 동네 노는 형이나 생선가게 아주머니, 복덕방 영감님이 의원을 한다고 했을 때 발생할, 정치의 속류화에 대한 경계와 반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오로지 대중에 대한 신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안, 예컨대 추첨으로 선출된 의원이 몇 달간 참관인이자 업무 인계자 개념으로 의정 교육을 받는, 의원 인턴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꿈은 단순히 그것이 이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주민이 자기 삶의 터전에 올곧이 뿌리박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자신과 공동체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과 가족, 자기 마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