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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Progress

[진보, 야!] 88만원 세대, 시골애들도 들어가나요?

by parallax view 2010. 4. 19.
88만원 세대, 시골애들도 들어가나요?
(레디앙 기고)

'진보정당은 지방 출신 20대의 보수성을 깰 수 있을까'라는 부제를 달았다. 지역에서 발생했던 비리사건을 좀 더 자세하게 제시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감수성을 부각시키던지, 팩트와 정책비판에 초점을 맞추던지 둘 중 하나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부족한 글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보수성은 진보정당들에겐 여전한 진입장벽이자 암초다. 어떻게 해야 이 장벽을 뚫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지방의 젊은 사람들을-역설적이지만 나를 포함해서 지방 출신 젊은이들은 결국 in Seoul하고 있지만-지지세력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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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쯤, 잠시 고향인 충남 보령에 내려와 있었다. 방학이라는 어중간한 시간 동안 딱히 일거리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히 애만 태우다가, 괜히 그러지 말고 공부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도 하고 홍대 바에서도 일하면서 겨우내 모은 돈은 곧 복학 학기 등록금과 몇 번의 데이트에 사용되었으므로, 당시 나는 그저 몸뿐이었다. 토익 공부를 핑계로 시립도서관을 왕래하며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은 도서관 컴퓨터로 하는 블로깅 뿐이었다.


고향 도서관서 만난 고교 동창생


용산에서 솟아오른 불길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블로깅도 잠깐의 잉여질에 불과했을지 모르겠다. 용산 참사에서 철거민의 화염병 투척과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렸던 그 때, 나는 이른바 ‘수꼴들’과 키보드워리어질을 하다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휴게실로 걸어갔다.


거기서 고등학교 동창 A를 만날 줄은 몰랐다. 지방 고등학교에서 나름 우등생이었던 A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그 날 처음 들었다. 마침 동창인 B도 같이 공부한다고 했다. 둘 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시험에 매진한다는데, A는 공사 인턴에 거의 합격했다가 채용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결국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꿨단다. 새삼 나와 너무나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낯설었다.


잠시 말을 섞는 동안 불편함을 느꼈던 걸 고백해야겠다. 좋은 직장 잡아서 안정되게 사는 것이 목표이고 바람인, 축구 이야기와 연예 이야기(혹은 연애 이야기!) 그리고 약간의 정치 이야기를 빼면 도무지 공통분모가 없는 관계들.


동창이라는 가느다란 끈이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유지시키는 관계 속에서 나는 내 속마음을 감춘 채 그저 끄덕끄덕 고개만 주억거렸던 것이다. 이게 같은 지방 출신이어도 서울 물 먹은 놈과 그렇지 않은 놈의 차이인 걸까?

문득 ‘20대의 보수화’가 큰 문제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지방에서는 20대의 보수화를 말할 여지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보수적인 것이다. 과연 지방에 ‘급진’이 존재는 하는가. ‘청년’이 존재는 하는가. 물론 지방이라고 뭉뚱그리기엔 각 지역마다 차이가 크겠지만 말이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세력이 우세한 곳


적어도 자유선진당과 친박세력이 우세를 점하는 충청남도에서, 바람이 불면 부나보다, 땅이 꺼지면 꺼지나보다 하는 충청도민의 이미지란 세대 연령을 묻지 않고 고스란히 전수되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 서울In Seoul 하지 않고서는 진보고 보수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지방 출신 애들의 삶인 것만 같다.


지역의 정치토양을 보면 더 답답하다. 보령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잘해야 민주당이고, 오히려 젊고 유능한 이미지는 한나라당이 가져가고 있다. 지역의 선거이슈는 여전히 토건이고, ‘갱제’다. 지방정부와 토건기업과 지역 유지 사이의 리베이트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고, 선거불신은 깊어만 간다.


여기서 ‘좌파’는커녕, ‘진보’라고 말하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인터넷이 적어도 정보의 유통에 있어서는 지역 간 격차를 완화시키긴 했지만, 진보가 몸에 와 닿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방 출신의 보수성도 완화하기엔 한계가 있다. 어쩌면 지방이야말로 노인들을 위한 나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내 또래 친구들도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고 있다. 작은 직장이라도 다니며 돈을 벌거나 공무원시험에 올인하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여기서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은 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88만원세대라는 용어의 학문적 엄밀성은 잠시 미뤄두자. ‘선언’으로서 88만원 세대론은 나름의 파격이었고, 빈곤과 양극화가 세대를 이어 만성적으로 유전될 가능성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많이들 비판했듯이, 정작 88만원 세대의 울타리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용어 자체가 낯설다는 게 난점이다.


지방에 붉은 깃발 펄럭일 수 있나


88만원 세대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지방은 식민지라고 하거나 말거나, 일상에 치이고 생계에 바쁘다. 또, 지방일수록 가난할수록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세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방 같은 변수는 쉬이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그나마 여성이라는 변수가 조금이라도 부각되는 건 다행스런 일이지만, 지방은 여전히 '아웃 오브 안중' 아닐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그런지 진보정당에 대한 요구가 빗발친다. 좀 더 세련되어져라. 섹시해져라. 화이트칼라를 잡아라. 다 좋다. 그런데 진보정당들-기왕 ‘진보’를 표방했으면 어느 당이든 좀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복수로 표현했다-이 지방에, 그리고 지방의 20대에게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 나는 의문이다.


울산 같은 이른바 ‘진보벨트’ 아니면 부산, 광주, 대전 같은 규모의 도시가 그나마 각 당의 힘 안에서 끌어안을 수 있는 한계라는 건 나도 안다. 아는데, 너무 아쉬운 것이다. 진보정당은 지방민의, 특히 지방 출신 20대의 보수성을 깨고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까.


앞서 지방의 보수성에 대해 말을 늘어놓으면서 잠시 비관했지만, 진보란 그 비관을 깨는 과정이 아닐까.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좌빨들’이 어떻게 해야 지방에 침투해서 붉은 깃발을 펄럭일 수 있느냐 그 얘기다.

무상급식 논의가 한창이다. “그거 사회주의 아니냐”란 공세조차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유행 중이다. 한나라당까지 슬그머니 공약으로 내세우려드니 말 다했다. 학교는 서울, 지방 가리지 않으므로 무상급식 공약은 그야말로 전국적인 이슈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 공약이 제시되는 걸 이어 ‘포괄적 복지(국가)’에 대한 주장도 같이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토건기업과 지역유지들과의 싸움


그렇다면 이제 그 기세를 몰아 지방에서도 포괄적 복지를 내세울 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현실화할 당위는 서울보다 지방에 더 있지 않을까. 노인들은 늘어만 가고 경제 규모는 줄어드는 지방에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일이 인구가 지나치게 밀집해 있는 대도시보다 좀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이 놓여 있다. 예산이다. 지방의 취약한 재정구도에서 어떻게 복지예산을 확충할 것인가. 그걸 고민하고 확보하는 게 진보정당들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토건에 들어가는 비용만 줄여도 예산을 확보하는 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진보정당들은 새로운 싸움에 들어가야 할 게다. 토건기업과 지역 유지들과의 싸움 말이다.


포괄적 복지 내지는 무상복지가 과연 지방(출신)의 2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적어도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면서 20대 빈곤화를 막아야 한다는 선언 백 번보다, 가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주고, 아플 때 병원 갈 돈을 면제해주며, 아이 낳을 걱정 없이 주거와 생계가 보장되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보정당들이 지방을 포기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지방에서 보수성이 유지되기란 너무나 쉽다. 변경일수록 관습에 대해 완고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들이 지방에 파고들어야 할 이유는, 지방 출신 20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이, 그들이 진보의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A와 가끔 만나 이야기를 듣곤 했다. 누구는 K대를 졸업한 다음에 어디 연구원 들어갔다더라, 누구는 교도관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하는 따위의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A는 공무원 발령 지역을 보령으로 지망했단다.


자기 지역에서 조용히 직장 다니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A가 속으로 마뜩찮았다. 나는 A에게 동정심 같은 걸 느끼진 않았다. 내 주제에 무슨 동정심인가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재능도 꿈도 ‘조건’ 속에서 사라지는 삶의 무거움과 부박함을 떠올렸다. 보수성이란 ‘사는 대로 사는 삶’ 속에 있을 것이므로, 나는 진보정당들이 ‘사는 대로 사는 삶’을 하나하나 깨뜨려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