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 Think

김규항의 북세미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by parallax view 2010. 5. 13.
0. 원래는 잡담이나 쓰려고 했는데 옛날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아래 따로 포스팅했다.

1.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홍릉초등학교 뒤, 그러니까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맞은편 골목에 들어가면 있는 공공도서관이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시설도 좋고, 구비 도서도 풍부한 편. 도서관 안에는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무엇보다 동네 주민들, 노인들이 많이 찾는다. 아이들도 자주 온다.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있는 거야 이젠 기본이겠지만, 여러모로 '주민들의 쉼터'가 되겠다는 발상이 참 보기 좋다. 철학자 강유원, 소설가 장정일 등이 시민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강유원 씨의 강의는 끝난 뒤 <인문 고전 강의>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여형사, <인문 고전 강의>).

2. 거기서 매번 북세미나라는 걸 하는데, 이번에는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이었다. 3월에 출간된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팬사인회를 겸했는데, 책 얘기보다는 교육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책이야 지승호랑 인터뷰한 내용이고, 거기 할 말 다 있어서 교육 얘기가 많이 나온 게 반갑고 더 흥미로웠다. 보수 부모는 자기 자식이 일류대학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 부모는 자기 자식이 진보적인 일류대학생이 되길 원한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말이다. 김규항이 말했듯이 '우리 안의 이명박'을 발견하고 직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 뿐."이라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3. 묻고 싶은 질문은 있었지만, 어느 샌가 머릿속에서 스르르 녹아버렸다. 그냥 듣고 싶었다. 김규항은 처음 세미나 시작할 때 고래가그랬어 후원쪽지를 나눠주었다. '3천 공부방에 고래를!'이라는 쪽지. 1구좌당 9,5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구좌 하나 신청하면 가난한 아이들의 공부방에 고래가그랬어 하나를 넣을 수 있단다.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지금 처지에 어찌, 하면서도 일단 챙겼다. 고래 이야기를 할 때 김규항 표정은 참, 이런 표현 괜찮은가 모르겠지만, 행복해 보였다. 어렵고 고단한 길이었지만 개간으로부터 7년. "강성 빨갱이 김규항이 애들 책을 내?"라는 반응이었던 과거가 있었다고. 그런데 나는 고래 얘기를 하는, 고래가그랬어를 만드는 김규항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4. 그저 경쟁 사회에 치이는 애들이 너무 불쌍해서 고래가그랬어를 만들었다고. 만약 아직 태어나지 않을 애들한테 태어날 나라들 브리핑 해 주면 한국은 아무도 안 갈 꺼라고. 이런 나라는 망한다고 하는데, 정말 이 나라가 꼭 그렇다. 강남에서 고래 간담회 했다는 이야기는 더 섬뜩하다. 경쟁해서 좋은 학교 가고 힘을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말. 부모가 한 말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애들이 한 말이란다.

5. 요컨대 좋은 부모가 된다는 데에는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언젠가, 아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에 쉽게 잔인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아이를 잔인하게 만드는 건 부모다. 부모의 탐욕이 아이를 병들게 한다. 진보적인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는 어렸을 때 놀게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막상 아이가 방과후 30분이라도 소재 파악이 안 되면 불안한 게(유괴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or 감히 학원을 땡땡이쳐!) 지금 부모들일 게다. 나라고 예외일까? 김규항처럼 아이들에게 대학에 가는 건 너의 선택이다, 안 가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을까?

6. 지금 대한민국 교육 문제는 교육 문제가 아니라 입시 문제라는 지적은, 너무 오래되었지만 진실이기에 뼈 아프다. 시스템의 변혁도 변혁이지만, 끝내, 자기부터 변혁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반복된다. 그게 나 혼자라면 쉬워 보인다. 하지만 부모가 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김규항 북세미나가 내게 남긴 메시지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없는 애까지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고래 후원신청 게시.
고래가그랬어 후원신청하기

'Read &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단평  (6) 2010.06.18
책세상문고 서평  (2) 2010.05.19
<군주론>과 관련된 서한들 중 하나  (2) 2010.04.28
편집자란 무엇인가  (8) 2010.04.26
100409  (12) 201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