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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리뷰] 별을 쫓는 자

by parallax view 2008. 11. 6.

로저 젤라즈니의 '별을 쫓는 자'(원제 Eye of Cat, 김상훈 역, 북스피어)은 인디언인 나바호 족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다. 윌리엄 블랙호스 싱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사냥꾼이자 주술사(메드신 맨)로서, 일족의 마지막 후예다. 그리고 지구는 우주의 다른 행성들과 교역을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씨족의 숨겨진 이름인 '스타트래커'('별을 쫓는 자') 그대로, 그는 우주를 헤집으며 수많은 행성에 흩어져 있는 괴물들을 사로잡아 지구로 가져간다. 그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되었으며, 수 세기 동안을 냉동수면과 의학기술로 연명하여 아직도 중년의 외모와 체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음을 알고 은둔에 들어간다. 그의 마음은 너무 늙었고 지쳐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스트레이지인 암살자로부터 유엔 사무총장을 지켜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늙은 사냥꾼은 자신이 암살자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암살자를 능가할 암살자이자 과거 자신이 사로잡았던 외계생명체 '캣'(Cat)과 계약을 맺는다. 암살자를 죽이면 자기 목숨을 주겠다는 계약을.

'별을 쫓는 자'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있다. '캣'을 풀어주고 암살자를 죽이기까지의 내용이 1부, 그리고 주인공 블랙호스 싱어가 '캣'이 허용한 도주범위 내에서 도피를 거듭하다가 결국 자아와의 대결을 경험하는 2부가 그렇다.

번역자 김상훈이 소개하고 있듯이 이 책을 두 편의 중편이 이어진 하나의 시리즈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1부에서의 느슨하고 헛점투성이인 구성과, 2부에서의 극적이고 자아성찰적인 심리묘사는 아예 책을 따로 나눠서 출판했어야 한다는 인상마저 든다.

젤라즈니는 장편 '내 이름은 콘래드''신들의 사회'로 국내에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가적인 역량은 중편에서 발휘된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중·단편들은 풍부한 시적 은유와 신화적 상징이 속도감 있는 사건과 함께 펼쳐져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이 멘트는 그의 작품을 소개할 때면 반드시 나오는 전매특허 같은 것이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서평

비록 '신화 SF'라는 컨셉으로 '내 이름은 콘래드'(그리스·로마 신화)-'신들의 사회'(인도 힌두 신화)-'별을 쫓는 자'(나바호 족 신화)로 세 작품이 하나의 장편 시리즈로 묶이지만, '별을 쫓는 자'는 압축적인 문장, 등장인물의 과감한 생략, 비약이 강한 스토리 전개 등 장편이라면 기피할 요소들이 두드러져 중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미국 코믹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 구성도 상당히 실험적이다.

또한, 주인공의 성격 또한 이전 작품들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 그 동안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하든 기어이 성공하고야 마는 수퍼 히어로'로서의 주인공이 아니다. 작가는 늙고 퇴색한 영웅의 모험과 여정이라는 스토리를 선택함으로써 이제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드는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나 프랭크 밀러의 만화 '다크나이트 리턴즈'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작품의 압권은 2부에 있다. '캣'과의 대결을 위해 억지로 짜맞추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1부의 구성 말고 스토리만 따라가 보자. '캣'은 과거에 자신을 사로잡은 사냥꾼을 순순히 죽일 생각이 없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칠 의지를 상실한 상대는 사냥감조차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캣'은 그의 생존본능을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여유를 준다.

한편, 블랙호스 싱어는 '캣'의 장난감이 된 대신에 점차 자신의 본질을 향한 여정에 돌입한다. 이 과정은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의 영웅서사의 과정이기도 하다. 출발-입문-귀환의 과정에서 모험에 대한 소명을 받은 '영웅'은 험난한 모험을 거쳐 영광을 얻는데, 이 영광이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다. 이는 곧 삶에 대한 찬미이자 죽음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다.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나바호 족 신화다.

태양신과 '변화하는 여인'(에스차나틀레히)의 쌍둥이 아들인 '나예네즈가니'와 '토바지스치니'의 모험. 그리고 세상에 웃음과 혼란을 일으키는 '트릭스터'인 코요테 전설. '최초의 남자'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의 신화적 여정이 그렇다. 특히, '괴물 사냥꾼' 나예네즈가니는 블랙호스 싱어의 원형으로써 작품 안에서 주인공을 돕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2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싱어의 꿈-탐험은 독자에게 혼란을 줄 여지가 많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싱어의 외부세계와 내면세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야기 전개는 이상의 소설 '날개'를 연상하면 혼란이 좀 줄어들 것이다. 이 '꿈-탐험'은 곧 신화와 꿈이 무의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상징하며, 사냥꾼인 주인공이 자신의 진정한 '적'이자 사냥감인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적'이자 '그림자'인 자신은 문명사회에 안주했더라면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르게 살았을 가상의 자기자신이다. 나바호 족의 전통을 버리고 주술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했을 자기 자신, 그리고 연인을 죽음에 처하지 않게 했을 자기 자신... 후회와 망상, 자기혐오야말로 그의 진짜 적이었던 것이다. '영웅'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건 작품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별을 쫓는 자'는 우리에겐 낯선 나바호 족의 신화·전설을 주 소재로 하기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에 생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SF를 표방한 주제에 난데없는 자아성찰이라니? 싶은 당혹감도 들 것이다. 하지만 로저 젤라즈니의 소설이 보통 이렇다. 게다가 이미 SF와 판타지를 비롯한 장르 간의 경계는 일치감치 무너졌다. 그저 상징과 은유의 향연을 마음껏 즐길 것을 권하는 바다.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 : 작품 곳곳에 새겨진 코요테 전설과, '몽타주 기법'(신문 기사 등을 발췌·인용하는 모더니즘 기법)으로 묘사된 세상사를 유심히 살펴보길. 작가의 시니컬한 유머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렛츠리뷰



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나의 점수 : ★★★★

모든 이야기는 신화다. 신화의 극한으로 들어가는 모험에 동참해봄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