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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맘마미아!] 난년들의 연애를 허하라.

by parallax view 2008. 9. 22.


이번에 댓거리할 영화는 맘마미아다. 이미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유명해졌고, 국내에서도 뮤지컬 개봉으로 이름자 날린 작품이 헐리우드 자본과 스탭과 배우들을 만나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야 이미 숱하다만. 아빠없이 자란 딸내미가 진짜 아빠를 찾기 위해 아빠 후보(?) 세 명을 모두 결혼식에 초대하는 해프닝이 주된 줄거리.

이미 '스위니 토드'(2008)나 '시카고'(2000)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뮤지컬 스타일의 헐리우드 영화는(뮤지컬이 원작인 것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뮤지컬 영화'인 것들까지 포함하자면 하나의 장르마저 이룬다) 몹시 식상한 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맘마미아!'(2008)도 노래와 춤이 곁들어진 뮤지컬 영화, 게다가 명곡으로 가득한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게는 '죽어야 사는 여자'(1992)에서 메릴 스트립이 펼쳤던, 영원한 아름다움에 집착한 늙고 추한 여자 역이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리버 와일드'(1994)에서 미치광이 도주범 케빈 베이컨에 맞선 여장부로서의 메릴 스트립을 떠올린다. 그녀가 선택한 필모그래피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에서의 순정적인 주부, '로스트 라이언즈'(2007)의 냉철한 저널리스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밉살스럽고 신랄한 편집장 등 배우로서의 이미지 변화폭이 참 넓은, 좋은 배우다.

그런 그녀가 직접 노래까지 부르고(만 59세의 나이로 보통 가수 뺨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게 좀 의심가긴 하지만-_-;;), 춤까지 추며 나타나셨다. 단언하건대, '맘마미아!'는 메릴 스트립의 독무대였다. 귀엽게 얄미운 딸내미 역의 아만다 세이프리드도, 몸소 기타를 두르고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들려주신 콜린 퍼스도, 몸짱 근육 자랑하시며 아들만한 남정네를 농락하신 크리스틴 바란스키 님도 계시지만(연세가 많이 높으시다. 무려 52년생 ㅎㄷㄷ), 정말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듯 시원하게 노신 분은 분명 메릴 스트립이었다. 낭만적인 옛사랑을 가슴에 묻고 억척스럽게 살아가지만 늘 인생을 즐기려는 낙천적인 여자, 도나의 인생을 살았다. 

그녀가 울고 웃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을 추억하는 세 남자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네 엄마들, 특히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명부상에 편모로 기록된 엄마들이야말로 저 푸른 그리스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아니, 민박)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보다는 자식새끼들)과 한평생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고. 또 한 번 생각해 본다. 일상에 찌들고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엄마들에게 중년의 연애란 영화 속 낭만 아니면 드라마 속 불륜 밖에 없는 걸까 하고.


너 노래 그딴식으로 부를래? / 미안. 마티니 끊은지는 오래 됐는데...


예전부터 한겨레 21에 연재되어 오던 김소희의 오마이섹스를 즐겨보곤 한다(소희라는 이름에 혹하지 않길 바란다-_-;). 업무와 결혼, 육아 등등 기타 이유로 '시즌1'을 접고 약 1년만에 '시즌2'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결혼의 영향일런지 신랄하고 뻔뻔스런 섹스스토리를 기대하던 (본인을 포함한) 뭇 독자들의 목마른 마음을 달래주진 못했으나, 썩어도 준치라고, 여기 오래전 '시즌1' 시대의 명문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우리네 엄마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내 친구의 주변에는 이런 ‘난년들’이 적지 않다. 친구의 아이를 가르치는 방문 교사를 보자. 마흔 중반인 이 언니는 이혼하고 딸 하나 키우며 산다. 보험설계사, 방문판매원, 일식당 서빙, 학원 강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공사도 다망하다. 호프집에서 설거지하다 만난 17살 연하의 전기공과 3년째 목하 열애 중인데, 친구의 관찰에 따르면 이 언니가 남자를 쥐었다 놨다 하는 스킬은 가히 국보급이란다. ‘애 버릇 나빠진다’는 핑계로 몇날며칠 갈구다가 적절한 때에 문자 메시지 한번 쎄려주면 어린 애인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단다. 다만 요즘 이 언니보다 두살 위인 호프집 주인이 이 전기공 애인을 넘봐 약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공과는 무려 19살 차이 나는 호프집 주인 역시 불세출의 여걸이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세 언니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 손으로 악착스레 벌어 먹고산다. 잡초처럼 생활력이 강하지만,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을 두고 있진 않다. 대체로 연하남들을 사귄다. 이른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자들이다. 덕분에 일이면 일, 남자면 남자 뜨겁게 올인한다. 먹기 위해 벌고 살기 위해 연애한다. 중산층 이상의 생활·남편·정서·학력·커리어 기타 등등의 소유자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이들의 ‘과감함’은 여기서 나온다.
(한겨레21 제577호 김소희의 오마이섹스 :
난년들)


영화 속 메릴 스트립 같은 여자들은 이 나라에도 분명히 있다. 소금기 품은 바람이 부는 섬에 살고 있지는 않아도, 낡았지만 한 폭 그림 같은 호텔도, 멋들어진 그리스식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만 그런 '난년들'은 세상 틈바구니에서 조용조용히 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난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아빠 후보군이 세 명이 아니라 두 명이어도 골이 아픈 것이 일부일처제 아니던가(그런 의미에서 곧 영화로 개봉될 '아내가 결혼했다'가 소설의 주제-일처다부제-를 얼마나 살려낼지가 몹시 궁금하다).

물론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나, 난년들이 세상에 공공연히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사회의 문화적 장벽이 아직 높다는 걸 떠올린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낄낄대고 웃으며 즐겼어도 뭔가 아주 사소하게 불편했다. 우리에게 도나는, 난년들은 아직 영화 속에서나 활개치며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


마지막은 콜린 퍼스 씨의 중후한 모습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내가 노래 더 잘 부르는데... 겨우 007에게 밀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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