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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다크나이트] 왜 그렇게 심각하냐구?

by parallax view 2008. 8. 12.


1. 다크나이트. 배트맨의 애칭인 이 '어둠의 기사'는 이글루스만 봐도 영화 오타쿠 내지는 본인을 포함한 카피오타쿠들에게 하나의 선물이고 헌사이다. 영화는 대놓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사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변종임이 분명하지만.


너무 많은 말들이 오가서 더 이상 중언부언 말을 쓰고 가져다 붙이는 게 무의미하기까지 느껴진다. 국내 흥행성적은 미이라3보다는 못 해도 평가는 가히 압도적이다. 아니, 영화 자체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스펙터클한 연출, 빠르고 깔끔한 편집, 어둡고 강력한 캐릭터의 향연, 그들이 고담시를 무대로 펼치는 묵직한 드라마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펼쳐질 때, 어떻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배트맨이라는 수퍼히어로 아이콘을 사용한 대중 오락물이면서도 그 이상의 무거움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미 '배트맨'을 소재로 한 이상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배트맨이 처음에는 탐정만화(detective comics)였고, 하드보일드와 누아르의 이미지를 교접시켜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DC 코믹스 소속(?)인 수퍼맨이나 원더우먼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는 것이 당연했다(무엇보다도 배트맨은 '타고 난 영웅'이 아닌 게 컸지만). 프랭크 밀러가 '어둠의 기사의 귀환'(The Dark knight Returns)를 만든 것도 배트맨의 태생적인 어둠에 기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법의 질서를 위배하면서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는 자경단.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배트맨이 지키려는 정의는 무엇인가? 정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배트맨에게 또 다시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런 질문을 누가 던지는지 따져 보자. 그건 다름 아닌 조커다.




2. 스스로 '혼돈의 사도'라고 밝힌 절대악 조커. 허지웅 씨는 조커를 통해 영화의 화두를 '평등'에 대한 입장과 '당위'의 충돌로 보고 있다.<고담에선 모두가 정의를 원한다>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행동하기에 조커는 재앙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에는 평등을 향한 열망이 전제돼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궁극적인 평등에 도달하기 불가능하고(화폐를 불태우는 조커의 모습-그는 자본주의를 포함한 모든 규정된 제도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모두가 공평해지는 길은 극단적인 무정부주의 상태의 혼란뿐이라는 것이다. 최소한 공포만큼은,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공히 유효하니까. 평등하니까.


 

하지만 과연 조커의 행동을 평등에 대한 열망이나 관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포를 통해 만인의 평등을 꿈꾼다는 수사는, 고담시를 공포로 '지배'하고자 하는 조커의 욕망과 충돌한다. 조커가 원하는 것은 혼돈 그 자체이지 거기에 따라붙는 옵션이 아니다. 설령 '평등'이 옵션으로 따라온다 해도 그것은 곧 홉스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유일자'로 군림하는 제왕이 원하는 평등이다. 그러니까 "나 이외에는 모두 평등하다" 라는, 불평등의 평등 논리가 관철되는 것이 아닌가.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 민중의 권력을 한 몸에 '위임'받은 제왕은 민중을 '공포'로써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조커의 성격을 너무나 강렬하고 뚜렷하게 드러낸다. 은행을 터는 같은 편을 서로 죽고 죽인다. 악당에게도 나름의 룰이 있을 것이나, 조커는 그 룰을 거부하고 동지의 등짝에 총을 쏘게 한다. 그러나 룰을 거부한 자신은 희생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혼란 속에서, 혼돈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마저 농락한다. 배트포드를 타고 달려오는 배트맨에게 "나를 들이받아!" 라고 가차없이 말하는 조커에게 자기 목숨이란 게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이병헌 분)의 컨셉이 그러할 것이나, 악인의 '격'에서는 조커를 따라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조커는 무원칙해 보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무원칙과 비이성은 '원칙과 이성', '계획'을 뒤집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아나키스트이자 자기 원칙에 충실한 악당이다. 그런 악당이 물어보는 것이다.


너의 존재가 고담시를 바꿔놓았어. 내가 바로 증거다. 자,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볼테냐?


3. 처음 이야기했던 질문부터 답해보자. 조커가 물었던, 그리고 배트맨이 지키려했던 정의는 무엇인가. '법 앞의 평등과 공공선'이라는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배트맨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다. 일개 시민의 위치를 거부하고 초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배트맨에게서 어떻게 시민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약자를 지키고 강자의 폭력에 저항한다'는 취지는 무법에 대항하는 자경단의 변명일 뿐이다. 고담은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법이 있으면서도 법이 없는 사회에서 자경단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약자'와 '강자', '희생자'와 '가해자'는 누가 판단하는가. 결국에는 법이 아닌 자경단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홉스식의 또다른 제왕, '리바이어던'의 탄생일 뿐이다.


'어둠의 기사'의 군림은 또다른 악을 낳았다. 조커는 배트맨의 어두운 페르소나다. 이 둘은 조커가 말했듯이 같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괴물이고, 법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악이다. 여기서 관객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차악과 최악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뿐이다. 물론 영화는 차악의 선택을 유도하고(여러 블로거가 따지곤 하는 '죄수의 딜레마' 시퀀스 역시 시민들이 '양심'과 '이기심'의 선택 중에서 '양심'을 선택하지만 단체로 죽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양심' 또한 차악이다.), 배트맨이 영웅의 위치를 포기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조커와 배트맨이 둘 다 살아있는 이상, 배트맨이 만들어 놓았던 새로운 혼돈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수퍼맨이 미국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라면, 배트맨은 미국 이외의 나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일 것이다." 씨네21은 배트맨의 존재에 관한 마이클 케인(알프레드 역)의 말을 소개하면서 영화의 현재적, 정치적 의미를 강조한다. 즉, 미국의 '정의'를 위해 권력과 폭력을 행사할 때 세계의 혼란은 그치지 않고 더욱 강력해지며, 지방검사 하비 덴트의 몰락과 투페이스의 탄생이 상징하듯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과 세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영화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해석 또한 가능할 것이나, 영화는 배트맨이 자신의 영웅성을 버리고 악당의 위치에 설 것을 선택하는 순간 박살난다. 휴대폰 도청장치를 이용한 소너를 영원히 정지시키는 폭스 사장은 정의를 명분으로 한 절대권력(도청과 감시)을 버리고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공화주의자의 상징과 같다. '시민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적인 공화주의라기보다는 로마적인 공화주의에 가까울테지만, 영웅의 이야기 속에서 '시민'의 위치와 딜레마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미국적인 해석인지도 모르겠다.


4. 영화 '다크나이트'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가 던지는 화두와 영화사적 업적이 너무 뚜렷하고 무겁기 때문이다. 배트맨이 추구하는 정의는 공공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의가 분명하다. 그러나 대중은 종종 법이 지켜주지 못할 때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를 꿈꾼다. 만화와 영화는 그런 욕망을 꿰뚫어보며, 대중에게 영웅의 존재를 통한 대리만족과, 현실에는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줌으로써 관객을 안심시킨다(그러나 영화의 진중함은 여전히 불편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는 대리만족과 현실인식의 절정을 양립시킨 유일한 블록버스터일 것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가 '다크나이트'와 맞먹을만 할까(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이라는 같은 소재로 자기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아마 당분간은(어쩌면 10년 단위의 좀 더 오랜 시간 동안은) '다크나이트'의 입지를 깰 만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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