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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톱니바퀴와 괴물

by parallax view 2024. 8. 18.

금요일에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 읽기를, 토요일에는 다이앤 코일의 《톱니바퀴와 괴물》 읽기를 마쳤다. 《어둠의 심장》에 대해서는 오래전 힘겹게 읽었던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 중 콘래드 부분(〈5장. 로맨스와 사물화: 조셉 콘래드에서 플롯 구성과 이데올로기적 봉쇄〉)을 다시 읽고 리뷰를 쓰는 게 좋겠다.

다이앤 코일의 《톱니바퀴와 괴물》(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2023)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충격 속에서 예비되고 쓰인 책이다(지은이가 2012년부터 2020년 사이에 했던 강연을 바탕으로 개고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주류경제학의 세례를 받은 경제학자로 보인다. 하지만 지은이 스스로 밝혔듯이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기에(영국 재무부 소속 경제학자로 이력을 시작해 《인디펜던트》의 기자로 일했고 BBC 신탁 부위원장, 영국 경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맨체스터대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의 이론에 경도되지 않고 보다 실질적이면서 현실에 바탕을 둔 교육과 정책 수립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는 경제학과 경제학자에 대한 힐난(“경제학자들은 현실을 너무 몰라.”)을 되받아치는 한편, 경제학과 경제학자가 놓치는 부분(“경제법칙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아.”)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경제학의 수행성(performativity) 또는 반영성(reflexivity)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는데도 경제학자들은 이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경제학자들은 행동주의를 이론 틀에 수용하긴 했어도(행동경제학), 신고전학파 또는 한계효용학파의 전제인 수확 체감의 법칙(생산을 위한 요소의 투입이 지속될수록 생산량이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에 여전히 매여있어 수확 체증의 법칙(생산을 위한 초기 투자액은 크지만 한계생산비용이 0에 수렴하는 경향)이 강하게 작동하는 디지털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이론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 디지털 경제와 인공지능의 부상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보다 강하게 말하면 ‘정세[conjoncture]’)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그저 이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은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국가와 자본)에서 정책과 경영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현실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주조할 것이기에, 지은이는 경제학이 보다 나은 측정 기준(metrics)을 고안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류경제학의 철학적 전제인 공리주의, 방법론적 개인주의, ‘분리 프로토콜(경제학을 사실에, 철학을 당위의 자리에 올려놓고 경제학이 공평무사한 사실을 다룬다고 간주하는 태도)’, 개인을 톱니바퀴에, 사회를 기계장치에 빗대는 은유, 일종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상호 의존성과 자기 반영성이 강한 디지털 경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때, 그리고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던 후생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킬 때 금융위기와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를 집약하는 용어가 바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다. 지은이는 오래된 용어인 정치경제학의 부활을 제안함으로써, 경제학이 ‘사실’에 입각한 (기술적인[technical]) 학문이 아니라 공공의 의무를 다하는 (정치적인[political]) 학문임을 천명한다.

《톱니바퀴와 괴물》은 지은이가 경제학계 ‘내부’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지은이는 경제학자가 현실의 ‘외부’에 있을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는 걸 덧붙여야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을 사회문제의 태풍의 눈으로 보고 연구했던 사회학자, 인류학자 들의 연구가 어느 정도 학계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단적으로 지은이는 경제학의 수행성을 이야기하면서 도널드 매킨지(Donald Mackenzie)의 연구(《카메라가 아니라 엔진이다: 금융모델은 어떻게 시장을 형성했는가(An Engine, Not a Camera: How Financial Models Shape Markets)》 등)를 직접 언급한다.

디지털 경제의 행위자들이 톱니바퀴(Cogs)가 아니라 괴물(Monsters)이라는 지은이의 은유는 미셸 칼롱(Michel Callon)이 〈경제적 시장이 사회적인 것의 증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고(An Essay on the Growing Contribution of Economic Markets to the Proliferation of the Social)〉에서 다룬 ‘사회적인 것의 증식’과 ‘호모 이코노미쿠스 2.0’에 상응한다(매킨지와 칼롱은 브뤼노 라투르, 존 로 등과 함께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 [ANT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인간 행위자들’이다). 수행성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측정 기준 또는 계측학이라는 문제로 넘어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론의 구축이 현실의 구축으로 직결된다는 것이 수행성 개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지은이는 ‘실질 GDP[real GDP]’의 관념성/비현실성을 지적하는 한편, 경제를 계측할 새로운 척도를 개발해야 할 필요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1장만 잘 넘어가면 2장부터는 비전공자도 비교적 순조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6장에서 사회주의 계산 논쟁을 언급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완벽한 계획경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기술진보를 ‘진보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희망을 유보시킨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다(계산이라는 관점에서 시장경제 옹호자와 계획경제 옹호자가 같은 전제를 공유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2015] 또한 참고할 만하다).

번역은 전반적으로 잘 읽히게끔 다듬어졌고 주석도 비전공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이 덧붙인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reflexivity를 ‘반영성’이 아니라 ‘반성성’으로 번역한 것과 political economy를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국가경제학’으로 번역한 것이 그렇다. 전자는 ‘반영’이라는 개념을 놓치고, 후자는 《자본(론)》의 부제인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강신준 교수의 주장에 의지하는 바람에 지은이가 사회 참여적인 경제학의 부활을 제안하는 뉘앙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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