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8.21)
게일 루빈, 페미니즘을 급진화하다
'일탈적' 페미니스트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재)사유하기
‘페미니즘 전쟁’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페미니즘 이슈가 치열하게 제기되는 요즘이다.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 사태를 비롯해 ‘헬조선’의 현실에서 기인하는 불안을 배경으로, 공공연히 자행된 여성혐오misogyny와 여성 살해femicide가 이 시대를 사는 여성에게 불러일으킨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메타 젠더주의자’ 정희진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여성혐오는 2010년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최근의 여러 보도에서 드러나듯 출판계에서 페미니즘 책의 판매량은 수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올해 여성학·젠더 분야 책들이 90~100종 정도 발간될 것이라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페미니즘 이슈는 가히 폭발적이다. 메갈리아의 등장과 그를 둘러싼 온라인 담론 투쟁은 페미니즘의 물꼬가 쉽게 마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페미니즘 도서 구매자의 상당수가 20대 여성이라는 출판계의 진단과 ‘페미니즘 굿즈’의 활발한 생산·유통은 1990년대의 문화운동을 넘어서는 활기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만큼 현 이슈에 대한 이론가와 운동가의 관심도 높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조류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 또한 제기된다. 이때 페미니즘을 급진적으로 견인하고자 한 ‘일탈적’ 인물의 연구를 살피는 것도 유의미할 듯하다. 박미선 한신대 영문과 교수의 「섹슈얼리티 권력체계와 일탈의 성정치: 게일 루빈」(안과밖 40호, 2016년 5월)은 ‘사도마조히스트 페미니스트’이며 ‘소아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문화인류학자 게일 루빈의 논의를 그녀의 저작 『일탈: 게일 루빈 선집』(2015, 현실문화)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연구자는 게일 루빈이 섹슈얼리티를 젠더와 중첩되면서도 자율적인 영역으로 살핌으로써 섹슈얼리티 연구의 새 장을 열었음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루빈이 당대의 보수화된 페미니즘 운동과 치열하게 싸우고 성적 실천의 자유를 선언하면서 이론적 실천을 수행했음에 주목해 루빈 논의의 현재성을 밝히고 있다.
루빈이 1970년대부터 40년간 써 온 글들은 미국에서도 2011년에야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공식적인 저작이라고는 『일탈』이 유일한 이 학자의 어디가 그리 특별하다는 것일까. 이는 그녀의 학문적 이력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루빈은 미시건대학을 다니던 1968년에 여성해방운동에 합류했고 1971년 게이해방운동이 결성되었을 때 곧바로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다. 이때 그녀는 동세대 페미니스트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녀가 사도마조히스트(SM)임을 선언하자 오랫동안 ‘가혹한 경멸’에 직면해야 했다. 이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우파의 반反 포르노그래피·반낙태·반동성애 담론에 포섭되는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을 구하자Save Our Children”는 구호를 내세운 캠페인이 ‘소아성애동성애자’를 공동체의 적으로 몰면서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했고, 주류 페미니스트 진영이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를 성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우파와 페미니스트 간의 의도하지 않은 연합이 형성된 것이다.
반反 포르노그래피 담론의 함정을
날카롭게 꿰뚫다
『일탈』에 수록된 글 중 가장 논쟁적이면서 루빈을 극적으로 알린 것은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였다. 연구자는 1970~80년대 ‘성전쟁sex wars’을 촉발하는 동시에 그 한가운데에서 성적 실천의 자유를 선언했던 이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글과 거의 동시에 쓰인 「가죽의 위험: 정치와 S/M에 관한 논평」과 「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반포르노그래피 정치에 대한 분석」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두 편의 글은 「성을 사유하기」 가 쓰인 혼란스러운 상황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루빈은 이 세 편의 ‘성전쟁 삼부작’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대부분이 S/M을 가부장제의 사악한 산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마조히스트 박해에 동참한다는 점(217쪽)”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 스스로 레즈비언 S/M 단체인 사모아Samois를 창립한 이후, 캐서린 매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 등의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스트와 논쟁을 벌였다. 루빈은 페미니즘 운동이 포르노그래피 반대 운동에 힘을 결집시키면서 사도마조히즘과 자위, 동성애 등의 성적 실천을 박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사도마조히즘과 포르노그래피의 쟁점을 결합한 정치는 섹스와 폭력을 둘러싼 여성들의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을 작동시킨다고 지적한다(218쪽).” 그런 점에서 루빈은 페미니즘에 대한 내재적 비판으로서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게일 루빈(1949~). 그녀는 섹슈얼리티를 젠더 이분법으로 분석할 수 없음을 치열하게 논증한 이론가이자, 자기 선언과 현장연구를 통해 온몸으로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모색한 연구자다.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은 주류 페미니즘 진영의 ‘여성성주의femininism’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연구자에 따르면 “여성성주의는 전통적인 젠더 역할을 강화하고 섹슈얼리티를 폭력과 연결함으로써 보수화를 촉진한다(219쪽).” 루빈은 “여제는 옷을 입지 않고 있다”로 시작하는 글 「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군림한 ‘여제’였던 반포르노그래피 담론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누가 무엇을 포르노그래피라고 규정하는지, 포르노그래피가 실제로 일으키는 폐해는 무엇인지, 수많은 폭력 재현과 외설적 장면이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상황에서 어째서 포르노그래피만이 문제로 지목되는지 면밀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빈이 보기에 반포르노그래피 담론은 그녀의 글 제목처럼 ‘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노선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힘을 소모시키는 동시에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우익의 반동적 정책에 잠식당했다. 더 심각한 것은 “반포르노그래피 정치는 포르노그래피, 매춘, 변태(도착)에 대한 낙인과 법적 처벌의 증가라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점이다(220쪽).”
루빈의 비판에 대해 매키넌과 드워킨을 비롯한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스트들은 인신공격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루빈 등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남성지상주의를 지지하는 엉클 톰’이라고 부르며 몰아붙였다(221쪽).” 하지만 그들은 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포르노 배우를 피해자화하는 데 그쳤다. 루빈이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반포르노그래피 담론에서 특정한 성행위를 ‘근본적으로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데 있었다. 성행위에 위계를 설정하는 이런 담론은 섹슈얼리티를 젠더 담론으로 다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하여
루빈의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은 위계적인 성적 실천을 문제제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성적 위계의 최상위에 놓인다. 반면 세대를 넘은 동성애,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성행위, 결혼하지 않은 이성애 관계, 합의된 관계 안에서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 등은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관계로 낙인찍힌다. 이런 성적 위계는 단지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반외설법, 피임과 낙태에 관한 정보 유포 금지, 동성애 금지법, 매춘 단속과 동성애자 체포의 강화 등 법적 강제와 더불어, 의학과 심리학을 동원한 성 일탈 행위에 대한 감찰, 경찰의 ‘성적 행위에 대한 수사권’의 강화는 특정한 성적 실천을 배제함으로써 또 다른 성적 실천을 정상화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때 “최선과 최악 영역의 중간지대에서 ‘혼인 관계가 아닌 이성애 커플’, ‘문란한 이성애자’, ‘자위’, ‘장기간 안정된 레즈비언과 게이 커플’ 등이 ‘좋은’/‘나쁜’ 성관계를 규정하는 위계적 가치부여의 경계선을 교란하는 ‘경합의 주 영역’을 형성(226쪽)”함으로써 정상화된 성적 관계를 의문에 부친다.
그런 점에서 젠더 이분법과 동성애/이성애 이분법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를 명확히 문제화 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루빈의 논점이다. 루빈은 '게이 가죽족' 연구와, '주먹 성교'를 하는 이들의 '카타콤'에 대한 문화기술지 등을 통해 다양한 성적 실천이 존재해 왔음을 밝혀 왔다. 이때 그녀의 연구를 그저 ‘(성적) 다양성’의 이름으로 일탈적 행위자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다문화주의’의 그늘 아래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루빈 자신이 강조하는 ‘원형적 퀴어성proto-queerness’을 환기하자면, 원형적 퀴어성은 “성 정치에 대한 토론을 여성, 레즈비언, 게이 남성으로부터 우리 대부분이 점유하고 있는 정체성 횡단과 복수적인 주체 위치를 좀 더 복잡하게 다루고 융합할 수 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위치다(228쪽).” 말하자면 루빈의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 혹은 ‘원형적 퀴어성’은 페미니즘에 대한 내재적 비판인 동시에, 페미니즘을 급진화하고 섹슈얼리티를 정확하게 문제화하고자 하는 이론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연구자는 루빈의 작업이 ‘기억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런 ‘기억의 정치’를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페미니즘 논의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에 실린 글마다 루빈이 성적 ‘일탈’ 집단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에 따른 사회불평등과 박해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당대의 상황을 분석한 것은 권력체계에서 박해받은 집단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맞서기 위함이었다(388면). 루빈의 지적 궤적은 초기부터 이런 침묵의 안개 속에서 기억상실에 맞서는 투쟁이었다. 페미니즘 이론과 여성운동은 젠더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과 급진적 섹슈얼리티 이론화 작업을 통해서 더욱 풍성하게 진화한다(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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