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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3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분류하기』(2015, 문학동네) 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모색해왔던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해 본다면, 머리를 스치는 첫번째 생각은 내가 쓴 책 중에 비슷한 책은 하나도 없고, 먼저 쓴 책에서 구상했던 표현, 체계, 기법을 다른 책에 절대 다시 써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부린 변덕 탓에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작가가 남긴 '발자국'을 열심히 찾아보고자 한 몇몇 비평가들은 여러 번 길을 잃었고, 분명 내 독자들 몇몇도 당황스러워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일종의 컴퓨터라느니, 원고 만드는 기계라느니 하는 명성을 얻었다. 나라면 차라리 여러 밭을 가는 농부에다 날 비유하겠다. 그중 하나에는 사탕무를, 또다른 밭에는 자주개자리를, 세번.. 2016. 1. 10.
인생사용법 『인생사용법』(2012, 문학동네) 2015년 12월 중순에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을 다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챕터씩 모두 99챕터를 매일 거르지 않고 읽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못 읽는 날도, 읽기를 미루는 날도 있다 보니 몰아서 읽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읽으려 했다. 페렉은 『인생사용법』을 침대에 엎드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며 썼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가 사물의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파고들 때 이를 제대로 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사물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이기도 하다. 페렉은 마르크스에 이어 상품의 세계로 내려간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물에서 삶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다시 인물과 사물을.. 2016. 1. 3.
사물들 『사물들』(2015, 펭귄클래식 코리아) 추석 연휴를 절반쯤 보내는 동안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었다. 소설은 상품의 스펙터클 속에서 부르주아의 삶을 동경하나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쁘띠(小)부르주아 혹은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조명한다. 이들의 20대는 욕망의 시간이며 실패의 시간이었다. 이들 청년은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혹은 부(富)의 부스러기만을 겨우 얻을 뿐이다. 약간의 정치적 낭만이 양념으로 곁들여지지만, 이들은 그저 상품만을, 더 많고 고급진 상품만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을 『사물들』에서 『상품들』로 바꿔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서동진의 표현대로 소설의 시간인 1960년대는 "다양한 사물이 집하되어 아슬하게 펼쳐 보이는 흐릿한 풍경일 뿐"(서동.. 201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