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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스스로 말하고 움직인다고?

by parallax view 2016. 7. 4.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6.05) 

<사물이 스스로 말하고 움직인다고?> 



사물이 스스로 말하고 움직인다고? 

행위자연결망이론과 지향계 이론은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까 


  유전자조작으로 만들어진 콩이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것도 너무나 익숙한 일이 되었다. 한동안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고 여전히 그 파장이 남아 있는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또 어떨까. 전 세계 경제를 혼란스럽게 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최신 금융공학으로 무장했던 월스트리트 금융맨들은 각종 금융이론과 기술이 낳은 경제 붕괴를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어느새 우리 일상에 스며든 스마트폰과 사회연결망서비스로 인한 파장은 또 어떨까. 이렇게 과학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회적 파장을 낳으며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행위자연결망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은 과학기술학STS 분야에서 제안된 이론적 프로젝트로 과학기술에 내포한 사회적 의미를 더욱 세밀하게 탐구하는 방법론이다. 행위자연결망이론은 기술이 자율성을 가지고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행위능력을 발휘한다는 관점에 서있다. 그 때문에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미시와 거시 사이의 경계를 의문에 부치는데, 행위자연결망이론의 주된 이론가인 브뤼노 라투르는 자신들의 접근법을 ‘코페르니쿠스적 반反혁명’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라투르, 데닛을 만나다: 행위자 연결망과 지향계 이론」(과학철학 17-2, 2014년)에서 ANT의 급진성을 조명하는 한편, 이론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을 데닛의 지향계 이론으로 보충함으로써 ANT를 더욱더 급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대익 교수는 『다윈의 서재』(바다출판사, 2015) 등의 대중교양서로 잘 알려진 과학철학자로 미국 터프츠대학교 인지연구소의 대니얼 데닛의 지도를 받았다. 논문은 얼핏 복잡해 보이는 행위자연결망이론과 지향계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이론 간의 연결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어 흥미롭다.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의문에 부치는

ANT와 지향계 이론 


  연구자가 주목하는 바는 ANT에서 ‘행위자’의 의미다. 기술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행위자란 “기호학적 정의(행위소, actant)이며, 이는 행동하거나 타존재로부터 행위능력을 인정받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행위자는 “자신 주위로 공간을 구부리고, 자신에게 다른 요소들이 기대게 만들며, 다른 요소들의 의지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인간뿐만 아니라 과속방지턱 같은 인공물이나 세균, 가리비 등 자연물도 모두 행위자라는 것이다. 과속방지턱은 차가 그 위로 과속으로 지나간다면 서스펜션을 손상시킨다. 그 때문에 운전자는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으며, 행위능력을 발휘하는 과속방지턱은 단순한 경고 문구가 아니라 교통경찰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여기서 행위자들이 구성하는 연결망network 또한 중요한데, 행위자는 연결망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연결망 안에 있을 때에야 행위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각각의 행위자가 구성하는 연결망은 여러 행위자의 연합과 동맹에 의해 변화된다. 과학자가 세균을 실험실에서 통제해 백신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ANT에서는 백신의 개발을 세균이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그동안 관계 맺었던 연결망에서 분리되어 과학자의 연결망으로 새로이 동원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연구자는 기술과학techno-science에 대한 ANT의 접근법이 행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복제자 이론과 대니얼 데닛의 지향계 이론이 그 공백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도킨스에게 복제자는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어떤 것 혹은 외부 세계(다른 복제자까지 포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자신의 복사본을 만드는 존재자”를 뜻한다. 여기서 복제자는 생물학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도킨스는 그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10)에서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로서 밈meme을 제시함으로써 복제자 개념이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밈에게도 유전자에 대해 그랬듯이 ‘이기적이다’ 같은 정신적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ANT의 대표적인 이론가 브뤼노 라투르(1947~) ⓒ www.holbergprisen.no


  연구자는 대니얼 데닛의 지향계 이론intentional system theory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킨스와 함께 진화론적 무신론의 투사로 활약하는 데닛은 『마음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6)와 같은 단독 저작은 물론,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함께 엮은 『이런, 이런 게 바로 나야!』(사이언스북스, 2001) 등 과학교양서로 국내에 소개된 철학자다. 데닛은 우리가 대상에 지향적 입장intentional stance을 가질 때 그 대상에 정신적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향적 입장은 “어떤 존재자에 대해 그것이 마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인양 취급하여 그것의 행동을 해석하는 전략”을 뜻한다. 지향성은 단지 사태를 기술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며 마음(의식)과 동일한 것도 아니다. 데닛은 사물의 지향성에 대한 실재적인 접근을 취하면서도 지향성을 가진 존재가 꼭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온도조절 장치 같은 사물은 마음이 없어도 지향성을 가질 수 있고, 자폐증 환자 같은 인간은 마음이 있어도 지향성을 가지지 못한다. 


  연구자는 복제자 이론과 지향계 이론은 “무엇이(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유일한 행위자와 통제자로서의 인간(또는 유기체)’ 개념을 의문에 부치고 그 대신 인공물을 복제자로 개념화하면서 “이 세계(자연계와 인공계를 모두 포함)가 복제자들의 전쟁터임을 시사”한다고 본다. 이렇게 자연과 사회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복제자/지향계 이론은 ANT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연구자에 따르면 ANT는 “단지 우스꽝스러운 은유에 불과하고, 기술과학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라기보다는 기껏해야 자기 투영적 스토리일 뿐”이며 또한 본래 의도와 달리 인간중심주의적인 성격을 간직한 데다 존재론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구자는 이런 비판에 동의하면서, 지향계 이론은 사물에 대한 존재론이자 인식론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지향계 이론의 도움이 있을 때에야 ANT의 반反인간중심주의적이고 인식론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모든 것은 사회다.” 

행위자의 연결망 개념을 선취한 가브리엘 타르드 


  여기서 연구자는 자신의 논의를 더욱 밀어붙여 두 이론의 유사성 배후에는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 이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의 태동기에 에밀 뒤르켐과 경쟁했으며 그 뒤 오랫동안 잊혔던 가브리엘 타르드는 질 들뢰즈 등에 의해 ‘모나드들의 사회학을 제안한 새로운 라이프니츠주의자’,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재조명되었다. 그의 주저인 『모방의 법칙』(문예출판사, 2012)과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이책, 2015) 등은 국내에도 번역된 상태다. 타르드는 『모방의 법칙』에서 “사회적 변화가 초월적 성격의 일반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혁신과 모방의 원리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게 사회 변화의 기본 원리는 바로 혁신과 모방이었다. 이때 혁신은 ‘기존 모방들의 재조합’을 통해 일어나며, 모방은 환경과의 적합성은 물론 대안들 사이의 투쟁 및 연합을 통해 구축된다. 


  타르드는 사회를 서로에게 봉사하는 개인의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그에게 모든 것은 사회이며 “그 사회는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모나드(단자)monad의 불안정한 연합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타르드의 사회관은 모든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을 하나의 무언가a thing로 간주하는 뒤르켐과 다르다. 특히 브뤼노 라투르는 타르드가 행위자들의 연결망을 제시했고 미시와 거시의 구분을 넘어섰음을 강조하면서 타르드를 통해 ANT를 보강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ANT가 타르드의 모나드론monadology의 자장에 있는 반면, 데닛은 자신만의 독특한 지향성 철학을 통해 타르드의 모방 이론을 창조적으로 보완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는 복제자/지향계 이론의 관점에서 ANT를 보충할 때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미시와 거시 사이의 경계를 더욱 급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ANT 식으로 말해서 ANT를 복제자/지향계 이론의 연결망에 새로이 동원하고 동맹/연합을 맺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의 혼종적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자의 전략은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사물이 ‘어떻게’ 연결망을 구축하는지에 관심을 둘 뿐, ‘왜’ 구축하는지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남겨두는 ANT에서 과연 그것이 약점이기만 할지에 대해 더욱 치열한 논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