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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망명길에 『도덕경』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한 전설

by parallax view 2016. 4. 2.

노자가 망명길에 『도덕경』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한 전설


베르톨트 브레히트


1

나이 칠순이 되어 노쇠해졌을 때,

선생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라에서는 선이 다시 쇠약해지고

악이 다시 득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발끈을 매었다.


2

그는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별것은 없었지만 몇 가지를 이것저것.

저녁이면 피우던 담뱃대와

항상 읽던 얇은 책 따위,

눈대중으로 흰 떡도 조금 챙겼다.


3

산골짜기를 기꺼운 눈으로 되돌아보던 그는

산길로 접어들자 이내 잊었다.

황소는 싱싱한 풀을 반기며

노인을 태운 채 천천히 씹으며 갔다.

그것도 노인에게는 충분히 빠른 걸음이었으니.


4

나흘째 되던 날 돌길에서

세리 한 명이 길을 막았다.

"세금 매길 만한 귀중품은 없소?" ― "없어요."

황소를 몰고 가던 동자가 말했다. "이분은 가르치는 분이셨어요."

이렇게 자초지종까지 밝혀졌다.


5

남자는 들뜬 기분에 또 물었다.

"이분이 터득하신 바는 무엇이냐?"

동자가 말했다. "흘러가는 부드러운 물이

시간이 흐르면 단단한 돌을 이긴다는 것이요.

단단한 것이 굴복한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어요?"


6

저물기 전에 서둘러야 했던

동자는 황소를 몰았다.

그들 셋이 흑송을 돌아 막 사라졌을 때 갑자기 남자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가 외쳤다. "어이 여보시오! 좀 멈추시오!"


7

"그 물이 어찌 됐다는 겁니까, 노인?"

노인이 멈췄다. "흥미가 있소?"

남자가 말했다. "저야 그저 세리일 뿐입니다.

하오나 누가 누구를 이기는지 하는 이야기는 제게도 흥밋거리지요.

그걸 아시면 말씀해주십시오!


8

그것을 제게 써주십시오! 이 동자에게 받아쓰게 해주십시오!

그런 것을 혼자 아시면서 가버리시면 안 되지요.

저기 우리 집에 종이와 먹도 있습니다.

밤참도 마련해드리지요. 저곳이 제가 사는 집입니다.

자, 그러면 약속하시는 거죠?"


9

어깨 너머로 노인이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기운 저고리. 신발은 없었다.

이마에는 주름 한 줄.

아아, 노인과 마주친 이 사람은 승자勝者가 아니다.

노인은 중얼거렸다. "당신도?"


10

공손한 청을 물리치기엔

노인이 너무 늙은 듯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묻는 자는

대답을 얻어 마땅하지." 동자도 말했다. "날도

벌써 찹니다요."

"좋다. 잠시 머무르도록 하자."


11

현인은 황소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짝이 되어 이레 동안 글을 썼다.

세리는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그 기간 내내

나직이 말했다. 밀수꾼들에게 욕을 할 때도.)

이윽고 일이 끝났다.


12

어느 날 아침 세리에게 동자는

여든한 가지의 격언을 건네주었다.

약간의 노자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그들은 예의 그 소나무를 돌아 돌길로 들어섰다.

말해보라―누가 이들보다 더 친절할 수 있겠는가?


13

그러나 우리가 찬양하는 사람은

책 속에서 그 이름이 찬란히 빛나는 현인만이 아니다!

먼저 현인에게 지혜를 캐묻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세리에게도 감사하자.

그가 현인에게 지혜를 달라고 청했던 것이니.


 - 에르트무트 비치슬라, 『벤야민과 브레히트: 예술과 정치의 실험실』(2015, 문학동네) 부록 3, 513~517쪽. 윤미애 번역.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epistelchristi/8742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