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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야!] "아, 연애하기가 너무 어렵다"

by parallax view 2010. 11. 16.
"아, 연애하기가 너무 어렵다" (레디앙 기고)

2주 전 글인데 이글루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새 블로그에 마저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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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하나. 친구 하나가 있다. 짧지만은 않은 구직 생활을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금세 부은 얼굴을 보니 회사 생활하기가 만만치 않은가 보다. 취업 전의 그는, 말하자면 남중-남고-공대-군대-다시 공대의 무한 루프를 돌면서 살았다. 대기업 연구원이면 조금 환경(?)이 나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건만, 웬걸. 딱히 연애할 여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잉여력 과시의 공통 코드

도무지 긴 연애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봤지만 뭔가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한테는 언제나 이성이 많은 환경만 찾아다닌다며 농을 던지곤 한다. 그냥 "니가 공대생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라고 말해도 별무소용이다.(소개팅이라도 한 번 해주고서 얘기하는 거냐고 한다면 내게도 할 말은 있다. 이 친구 딱 한 번 주선해줬다. 주선이란 잘해야 본전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이야기도 재밌게 하고, 나름 센스도 있는데, 이제는 버젓한 직장에서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왜 연애는 잘 안 될까.

케이스 둘. 블로그나 트위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잉여’임을 밝히는 남자들을 자주 본다. 그런데 이 ‘잉여’가 ‘루저’의 자기비하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인터넷 용어로 ‘기믹’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정체를 슬그머니 감추기 위한 가면이나 미끼를 말한다. 그러니까 잉여니 루저니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렇게 ‘패배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명문대 학생도 잉여고, 대기업 직원도 잉여다. 아니, 그런데 왜 님은 자기더러 잉여라고 하는 거임? 직접 이유를 물어보거나 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있으면, 자신의 ‘잉여력’을 과시하는 공통 코드가 하나 있다. 바로 연애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솔로부대원’임을 주구장창 설파할 때, “연애도 못하는 나님은 잉여 맞음ㅇㅇ” 하며 시시덕거릴 때, 자학을 넘어선 모종의 연대감마저 느껴진다. 뭔가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왜 연애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할까.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라는 노래가 있다. 그곳 학생들은 ‘지잡대’라는 기믹을 쓰곤 하는 K대의 프로젝트 밴드 ‘다윗의 막장’(한 명은 ‘다윗’을 맡고 있고, 또 한 명은 ‘막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의 노래다. 서론을 길게 내뱉다 소중한 친구에게 꼭 해 줄 말이 있다며 던지는 멘트가 절절하다.

세상에 널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 엄마 빼고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 단 한 명 있다면 그건 네 엄마야.” 엄마야. 영화 보자는 문자는 전체 문자고, 후배가 준 초콜릿은 먹다가 버린 거라며. 노래에는 주변에 ‘여자’는 많지만 연애는 못하고, 연못 속에서 펄떡대며 관리당하는 어느 공대생의 비운(?)이 담겨져 있었다.

연애 못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목수정 씨의 『야성의 사랑학』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되었겠지만, 지금 이 시대 젊은 남자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흘러넘치면서도 뭔가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그 ‘뭔가’는 뭘까. 나 같은 경우에도 줄곧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돈도 없고 여유도 없는데, 무슨 연애를 한담.”

그런데 그런 생각이 다 헛것이라는 게 요즘의 결론이다. 물론 돈도 많을수록 좋고, 여유도 있을수록 좋기야 하지만.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돈이 얼마나 많든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견고한 모든 것이 공기 속에 녹아드는 시공간, 그곳이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닌가. 만성적인 불안정은 곧 현대 사회의 속성이므로, 연애라는 지극히 역동적인 관계는 현대에 와서 좀 더 아슬아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와 연애하기가 ‘낮은 자’들끼리 연대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만 같다. 사람 하나 바꾸기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다지만. 공대생이든 문과생이든, 서울 출신이든 지방 출신이든, 저마다 환경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지만 연애에 한해서 요새 젊은 남자들에게 공통된 게 한 가지 있는 듯하다. ‘연애의 조건’을 너무 많이 따지고 있는 건 아닌가 말이다. 명문대도 나와야 하고, 영어도 잘 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취직(就職), 취혼(就婚)에 이어 취애(就愛)라는 말까지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자꾸만 스펙을 따지고 돈을 따지는 게 다 여자들 때문이다, 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여성들이 키 크고 돈 많고 좋은 대학 나온 남자들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어떻게 보면 게임 이론에도 참 잘 들어맞는 설명인 것도 같다. 상대방이 추구하는 바에 대한 대응 전략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 프레임에서 선택지는 두 개다. 여성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베팅을 계속하거나, 자신 없으면 판에서 빠지거나.

잉여라고 연애 못하나?

그 프레임 자체에 계속 갇혀 있는 이상, 연애는 언제나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버스 안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연락처 한 번 건네 본 적 있나.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들이대기라도 해 봤나.(이 얘기는 내가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한 번이라도 좀 해 볼걸)

가진 것 없이 자존감, 아니 자존심 하나만이라도 믿고 들이대기엔 세상이 너무 춥고 척박한 건 맞다. 그렇다고 잉여잉여 대면서 연애로부터 도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공대생이라고 연애 못 하나, 잉여라고 연애 못 하나. 아닌 것이다.

김어준 마냥 연애 상담할 깜냥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공대생과 잉여, 찌질남, 그리고 연애 못하는(아니, 안 하는) 남자들을 응원하고 싶다.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여자는 한 명쯤 있을 거야. 엄마 말고.” 라고 말해주고 싶다.(이런 말이 더 잔인한가?) 다만 그 전에, ‘88만원세대의 연애’라는 또 다른 경제적․사회적 조건 속에 파묻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알콩달콩 재밌게 연애할 수 있을지 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첫째도 둘째도 자존감이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그만 잉여잉여 하고, 컴퓨터를 끄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자. 마음에 드는 사람 생겨도 주저하다 괜히 어장관리 당하는 건 아닌가 생각 말고, 그냥 “나 너 좋아해”라고 말하자. 실패해도 괜찮다. 들이대는 남자에게는, 정도의 문제는 있지만, 그 들이댐만큼의 매력이 있다. 신앙은 기도하는 행위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사랑도 들이대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냐 말이다.

이제 차가운 계절이 다가온다. 연애하기가 연대하기보다 힘든 세상에서, 연애만큼 강렬한 연대는 또 없는 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맞잡고 당신 호주머니 속에 꼬옥 넣을 수 있길 바란다. 가진 것 없어도, 가능하다.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