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하지메를 G20 서울로" (레디앙 기고)
마쓰모토 하지메 입국 거부를 보며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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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한 남자가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확하게는 ‘다시’ 올랐다. 그는 입국거부자다. 당국은 그의 입국을 거부한 이유를 아주 쿨하게 내놓았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이란다.
아무래도 그는 굉장히 위험한 남자였나 보다. 자칼이었나? 적군파였나? 아니면 제이슨 본? G20 회의장을 폭파시키기 위해 잠입한 이슬람 테러리스트? 아니. 그는 허름한 옷을 입고 어슬렁거리며 공항을 기웃거린 한 명의 가난뱅이였을 뿐이었다. 그저 가난뱅이들끼리 신나게 놀아보자고 왔을 뿐인 남자, 마쓰모토 하지메 이야기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가난뱅이의 역습』(2009)을 낸 일본의 작가다. 작가이기 이전에 시민운동가고, 시민운동가이기 이전에 가난뱅이다. 왜 이렇게 ‘가난뱅이’임을 강조하느냐고? 그건 하지메가 해온 운동이 가난뱅이들의 난장이었기 때문이다.
호세이 대학 재학 시절부터 노숙자 동아리에 가입한 하지메는 학내에서 온갖 투쟁을 해 왔다. 그 투쟁이란 게 참으로 맥 빠진다. ‘호세이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만든 이래, 야외에서 냄비 요리를 해먹는 ‘냄비 투쟁’, 대학 사무실 앞에서 불고기를 해 먹는 ‘불고기 투쟁’, 학생 식당에 난입해 학식 개선 투쟁을 벌인 ‘학생식당 투쟁’ 등 우리 기준에서는 “대체 이런 것도 투쟁인가?” 싶은 투쟁을 공세적으로(!) 해 왔다.
가난뱅이들의 공세적 투쟁!
이 투사(?)는 대학 졸업 후에도 시끄러웠다.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하고, 재활용품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열어 진지를 구축했다. 크리스마스를 분쇄하기 위해 롯폰기에서 냄비 요리를 해 먹고, 오래된 가전제품도 악기 같은 문화재라며 전기용품안전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을 곯려주기 위해 대인원이 모이는 시위라고 신고한 뒤에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 위장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북돋기 위해 스스로 구의원으로 출마해 록 공연으로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의 정체가 몹시 수상하다. 만약 정부가 그의 전력을 알고서 막았다면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정부는 이 남자의 잠재적인 파괴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메는 안보 투쟁 시대의 청년들처럼 버스를 뒤흔들지도 않고, 깃발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자본주의의 아성 안에서 시치미 뚝 떼고 냄비 요리를 해 먹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어떻게 이게 운동이 돼?”라는 의문을 “이런 게 운동 아냐?!”라고 반문하는 뻔뻔스러움이 있다. 하지메에게 운동은 놀이다. 그것도 신나는 놀이.
운동은 신나는 놀이다
다시 그가 강제 출국된 상황으로 돌아가자. 하지메는 그의 친구들인 펑크록커노동조합과 함께 홍대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하지메 씨는, 대놓고 말해 위험인물은 아니잖아요. 나라를 뒤집자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G20 때문에 엄청 쫄아있는 것 같더라고요.” 홍대 두리반에서 ‘서울, 대혼란!! 가난뱅이 다 모여!’를 기획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 씨의 말이다.
“마쓰모토 하지메와 통화를 시도했어요. 정부에서 자기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자기는 오히려 더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하던데요. 공항 체류소에는 인도 사람, 태국 사람 별 사람 다 있는데 그 사람들이랑 수다 떨면서 국제적인 연대를 구축했다더군요. 세관한테 자기 유명한 사람이라고 소개해서 사진도 찍고.” (웃음)
하지메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펑크록커노동조합은 무사히(?) 공항을 통과해 두리반에서 그야말로 ‘미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작 한국에 와서 소동을 부린 것은 펑크록커노동조합이었으니, 하지메는 스스로를 미끼로 던졌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남자, 좋은 미끼였다.
권용만 씨는 과연 정부가 하지메를 막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메가 한국에 안 와도, 이번처럼 한국에서 ‘가난뱅이들 놀자!’고 공연하고 시위하고 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인터넷도 있으니까 생각을 전파하는 데 국경의 의미도 없고요.”
G20과 ‘준법정신’
정부는 11월에 열릴 G20 정상회의 개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지하철과 길거리에는 G20 서울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시민들의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광고물이 붙어 있다.
정부는 G20 서울 개최로 2005년 APEC 정상회의의 6천 7백억 원(최대 추산)을 훨씬 상회할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며 선전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광화문 주변과 COEX에는 경찰들이 경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싸인을 열심히 보낸다.
조금이라도 한국을 소란스럽게 할 만한 사람들을 미리 블랙리스트에 올려 관리하는 열성도 보이고 있다. 그 리스트에 마쓰모토 하지메 같이 제멋대로 사는 가난뱅이(불령선인(不逞鮮人)도 아니고 불령빈인(不逞貧人)인가?!)까지 올려놓는 세심한 터치라니. 이번 정부의 섬세함은 4대강 사업뿐 아니라 G20 회의에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 같다.
선전공세로 보면 정부는 G20 회의를 올림픽 보듯 한다. 온 세계인을 위한 축제. 얼마나 좋은가. 기왕 그렇다면 정부에게 발상의 전환을 권하고 싶다. 마쓰모토 하지메를 아예 G20 서울에 초청하는 것이다. 엄숙하게 질서 잡힌 서울에 무슨 볼거리가 있겠는가.
북한처럼 매스게임 보여줄 게 아니라면...
명색이 글로벌 시장과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시장경제체제의 시민들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북한처럼 매스게임을 보여줄 건가, 중국처럼 장대한 올림픽 개막식을 보여줄 건가. 보여줄 게 밋밋한 준법정신밖에 없다면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떻겠는가 말이다. “아, 한국은 참 재미없는 나라로구나.” 그걸로 끝나길 바라진 않겠지?
마쓰모토 하지메와 펑크록커노동조합을 국빈(國賓)으로 초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도로만 비워 달라. 그러면 알아서 잘 놀다 갈 거니까. 이봉창처럼 폭탄을 던질 것도 아니고, 안중근처럼 일제의 심장에 총알을 박을 것도 아니잖은가.
공연을 통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라. 붉은 악마 응원도 커버할 수 있는 경찰력이 공연 하나도 ‘보호’하지 못하겠는가. 구호 하나 없이 그저 신나게 노는 것조차 무섭다고 덜덜거리니. 아, 그러고 보니 지난 노무현 서거 국면에서도 촛불 하나 켜고 끄는 걸 두고 시민들과 실랑이 벌일 정도의 정부라는 걸 잊고 있었다.
“G20 서울은 장학사가 오면 신발을 정돈하라고 막 시키는 중학교 선생 같아요.” 권용만 씨의 말처럼 정부는 G20 회의를 세계 정상이라는 ‘장학사들’의 학교 방문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바에야 좀 더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G20 정상회의 의장국의 ‘위엄’ 아니겠나. 특히 개도국의 발전 문제를 의제로 올림으로써 ‘간지’를 낼 거라면, 대인배로서 ‘간지’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마쓰모토 하지메도 포용 못하는 정부의 대인배질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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