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8월이 반쯤 지나가고 있다. 방학도 거의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참 새삼스럽게 빠르다.
2.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에 이어, 다음 책 세미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주경철 씨 번역은 옮긴이 서문이 간결한 것부터 마음에 든다. 해제도 별로 길지 않고 본문 자체가 얇아 깔끔하다는 인상을 풍긴다(실제 독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참고자료들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어 역자의 인문학적 소양을 능히 짐작케 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부터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일부까지 발췌하면서, 토머스 모어의 시대와 <유토피아>를 이해할 문화적 배경을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어 꽤 친절하다. 무엇보다 토머스 모어와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서한을 같이 실은 데에 만족감마저 느껴진다.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아직 본문은 보지 않았고, 일부러 참고자료부터 읽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할 거 같다.
3.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 역시 도서관에서 찾았다. 맑스주의자로서, 또 모더니스트로서 건축과 문화 등으로 나타나는 근대성을 살피는 것 같은데, 뭔가 벤야민스러운 글이지 않을까 서투르게 짐작해 본다. 부제인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는 <공산당선언>의 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중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리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백산서당본에서 바꿔 옮겨놓은 부분만 이탤릭체로.)
표지 날개의 해설부분 :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모더니즘의 맹아를 본 버만의 문화론적 시각은 어떤 측면 모더니즘이 간직한 계몽의 기획을 결코 포기치 않는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오늘날 가장 강력한 '반'(反) 포스트모던적 입장에 서 있는지 모른다" 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으로부터 모더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이야말로 진정으로 포스트모던한 경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성)에 대한 재해석은 오래 전부터 탈근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을까.
4. 아렌트의 책에 관한 지난 서평들에서 못한 말들이 좀 많다. 아렌트의 글에서는 뽑아낼 것들이 참 많은 거 같다. '인간의 조건'(노동, 작업, 행위) 중 '작업'(work)에 대한 독립된 논의도 그렇고-아렌트는 맑스가 노동과 작업을 혼동한 것과 반대로 그것을 명확히 구분한 데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다-근대 과학의 발전과 철학 사이의 고리가 실종되고, 철학이 과학의 담론을 따라가지 못한지 오래되었다는 그녀의 지적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거 같다. 나는 적어도 칸트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뉴턴을 알아야 한다는 김우재 님의 지적에 동의한다. 아렌트는 데카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릴레이를 알아야 한다는 논지를 전개한 바 있다.
또,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서의 지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했던 '세계소외'는 두 가지 형태를 띄는 것으로, 하나는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탈해 자기 내면으로 끊임없이 숨어드는-어떤 면에서는 '행위'를 포기하는-경향을 말한다. 맑스의 '노동소외'를 오마쥬하는 듯한 이 개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형은 아마도 SF일 것이다.
5. 인간이 지구를 떠났을 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새로운 조건'이 될 것인가? 아직까지 이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 혹은 질문을 던진 SF 작품이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아서 클라크의 <라마>가 그럴까? 이건 무식의 문제다.-_-; 나는 아직 읽지 못했으므로 말할 수 없다.). 과장되긴 했어도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특히 1년전쟁 시기를 다룬 초창기 작품들과 '뉴타입'(신인류) 개념이 조금 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인간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은 이제는 너무나 많이 인용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영화 <론머맨> 또한 그럴 것이다(인형사와 죠브에게 있어 '광대한 네트'는 동등한 사람들 간의 관계망이라기보다는 일인독재가 가능한 폭력의 공간으로 보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 그런 점에서 SF는 오락적이었든 사변적이었든, 종종 인간의 존재론을 묻고 있다. 아렌트는 비록 단 한 문장일 뿐이었지만, SF가 인간의 존재론을 묻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조건>이 1958년에 나왔으니 그 지적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던 시대였으니까.
요점 : SF도 많이 봐야 된다.-_-;;; 한 동안 손을 못 댔는데... 세상엔 정말 읽어야 할 게 너무 많다.
2.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에 이어, 다음 책 세미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주경철 씨 번역은 옮긴이 서문이 간결한 것부터 마음에 든다. 해제도 별로 길지 않고 본문 자체가 얇아 깔끔하다는 인상을 풍긴다(실제 독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참고자료들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어 역자의 인문학적 소양을 능히 짐작케 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부터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일부까지 발췌하면서, 토머스 모어의 시대와 <유토피아>를 이해할 문화적 배경을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어 꽤 친절하다. 무엇보다 토머스 모어와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서한을 같이 실은 데에 만족감마저 느껴진다.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아직 본문은 보지 않았고, 일부러 참고자료부터 읽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할 거 같다.
3.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 역시 도서관에서 찾았다. 맑스주의자로서, 또 모더니스트로서 건축과 문화 등으로 나타나는 근대성을 살피는 것 같은데, 뭔가 벤야민스러운 글이지 않을까 서투르게 짐작해 본다. 부제인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는 <공산당선언>의 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중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리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백산서당본에서 바꿔 옮겨놓은 부분만 이탤릭체로.)
표지 날개의 해설부분 :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모더니즘의 맹아를 본 버만의 문화론적 시각은 어떤 측면 모더니즘이 간직한 계몽의 기획을 결코 포기치 않는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오늘날 가장 강력한 '반'(反) 포스트모던적 입장에 서 있는지 모른다" 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으로부터 모더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이야말로 진정으로 포스트모던한 경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성)에 대한 재해석은 오래 전부터 탈근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을까.
4. 아렌트의 책에 관한 지난 서평들에서 못한 말들이 좀 많다. 아렌트의 글에서는 뽑아낼 것들이 참 많은 거 같다. '인간의 조건'(노동, 작업, 행위) 중 '작업'(work)에 대한 독립된 논의도 그렇고-아렌트는 맑스가 노동과 작업을 혼동한 것과 반대로 그것을 명확히 구분한 데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다-근대 과학의 발전과 철학 사이의 고리가 실종되고, 철학이 과학의 담론을 따라가지 못한지 오래되었다는 그녀의 지적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거 같다. 나는 적어도 칸트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뉴턴을 알아야 한다는 김우재 님의 지적에 동의한다. 아렌트는 데카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릴레이를 알아야 한다는 논지를 전개한 바 있다.
또,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서의 지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했던 '세계소외'는 두 가지 형태를 띄는 것으로, 하나는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탈해 자기 내면으로 끊임없이 숨어드는-어떤 면에서는 '행위'를 포기하는-경향을 말한다. 맑스의 '노동소외'를 오마쥬하는 듯한 이 개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형은 아마도 SF일 것이다.
5. 인간이 지구를 떠났을 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새로운 조건'이 될 것인가? 아직까지 이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 혹은 질문을 던진 SF 작품이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아서 클라크의 <라마>가 그럴까? 이건 무식의 문제다.-_-; 나는 아직 읽지 못했으므로 말할 수 없다.). 과장되긴 했어도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특히 1년전쟁 시기를 다룬 초창기 작품들과 '뉴타입'(신인류) 개념이 조금 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인간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은 이제는 너무나 많이 인용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영화 <론머맨> 또한 그럴 것이다(인형사와 죠브에게 있어 '광대한 네트'는 동등한 사람들 간의 관계망이라기보다는 일인독재가 가능한 폭력의 공간으로 보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 그런 점에서 SF는 오락적이었든 사변적이었든, 종종 인간의 존재론을 묻고 있다. 아렌트는 비록 단 한 문장일 뿐이었지만, SF가 인간의 존재론을 묻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조건>이 1958년에 나왔으니 그 지적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던 시대였으니까.
요점 : SF도 많이 봐야 된다.-_-;;; 한 동안 손을 못 댔는데... 세상엔 정말 읽어야 할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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