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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시오노 나나미 전쟁3부작

by parallax view 2009. 2. 5.
역사의 가장 친한 친구는 사료도 아니고, 유물도 아니고,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울 유수의 고궁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경복궁의 심장인 근정전 앞에 서서 임금의 행차를 떠올려 본다. 좌우로 늘어선 문무백관 사이를 걷는 왕의 마음은 어땠을까. 임금의 자리 위를 덮는 높다란 지붕과 등뒤의 일월오악은 임금의 어깨를 얼마나 무겁게 했을까. 역사의 현장이란 결국 상상력의 문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재생을 위해서는 상상력보다 사료가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료는 항상 부족하다. 이 때 사료와 사료 사이의 간격을 메꾸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상상력은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역사를 탐구한다는 것은 종종 탐정의 추리와도 같다. 지금 보유한 자료에 근거하여 역사적 진실을 탐색한다. 하지만 이 사료라는 것도 순진하게 믿을 수만은 없다. 거짓을 말할 수도 있고, 혹은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만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가와 사료란 종종 탐정과 용의자(내지는 증인) 간의 진실게임이 된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료가 부족한 만큼 혹은 사료의 존재 그 자체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최대한 개연성이 있는 사실을 찾아나가게끔 추리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역사는 오락이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가 오락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오락으로서의 역사를 스스로 충분히 만끽한다. 그녀의 인기비결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최은석 옮김, 한길사/1998) 서문에서 자신이 <일리아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풀어낸다. 어렸을 때 경험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잔재를 뒤쫓아 역사를 탐색하고 글로 쓴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다른 역사가들과 비슷한 출발을 한 셈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연애다. 첫사랑의 추억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고 또 앞으로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듯이.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선택한 길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작가로서, 일종의 역사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다. 그녀의 역사 이야기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초기 대표작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오노 나나미의 강점은 역사에서 드라마를 뽑아낼 줄 안다는 점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는 베네치아 의사가 현장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기술한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일지>에 많이 기대고 있다. 시리즈 작품인 <로도스 섬 공방전>(최은석 옮김, 한길사/1998)과 <레판토 해전>(최은석 옮김, 한길사/1998) 역시 베네치아 자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전쟁3부작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베네치아인 것도 이 때문인 듯 싶다.). 그러나 단지 사료의 재해석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로 꾸미고, 사료와 사료 사이의 공백에 자신의 상상력을 풀어넣는 것으로써 역사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녀가 전쟁3부작으로 기획한 시대는 서양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전인 중세 말기다. 시오노 나나미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1522년 로도스 섬 공방전, 1571년 레판토 해전이라는 비교적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각 사건이 갖는 사회·경제사적 의미는 그다지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글 자체가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도 별로 관심있어 하지 않는 듯 하다.

왜냐하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일리아스>를 읽었던 감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야기꾼으로서,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할 뿐이다. 때문에 그녀의 역사소설은 여성만화가들의 순정만화에 더 가깝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투르크 술탄 메메드2세의 남색이나, <로도스 섬 공방전>의 두 십자군 기사 안토니오와 오르시니의 동성애 등은 8,90년대 일본 순정만화 코드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읽다보면 "아이고 아줌마!"(당시엔 아줌마였으니까) 하면서 낄낄대게 되는, 뭔가 만화스런 코드도 그렇지만 거대한 서사 속 인간군상의 내면과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한·일의 순정작가들의 작품과 비슷하다(김혜린의 <불의 검>이나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 같이). 그만큼 그녀의 이야기에서 연애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도스 섬 공방전>에서 사랑하는 기사의 복수를 위해 전장에 선 여인의 이야기나, <레판토 해전>의 영웅 바르바리고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과부 등은 동성애와 함께 냉엄한 현실정치의 강고한 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낭만을 불어넣는다. 그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은 역사로망이라는 표현이 알맞다.

비록 <로도스 섬 공방전>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우를 범하긴 했지만(한 인물의 장광설로 시대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작가로선 최대한 피해야 할 일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레판토 해전>에서는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고, 터뜨릴 때엔 빵 터뜨릴 줄 아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또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평상시엔 점잖은 척 하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도 나타났다 하면 "저 양반은 말이지..." 하며 열 시간 동안 카이사르 예찬론을 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 스스로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입장을 견지한다고는 하지만, 서양의 기사단과 기독교에 대한 서구 중심의 로망스에 대해서는 몹시도 관대한 모순도 나타난다. 영웅이나 귀족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움베르토 에코처럼 텍스트와 역사를 뒤집어서 중세와 현실을 동시에 풍자하는 재기발랄함과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공정하지도 냉철하지도 않다. 그러나 재미있다. 단지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한다면 역사가에겐 부끄러움이겠지만 작가에겐 명예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작가의 성의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듯 하다. 스스로 르네상스가 너무 좋아 현지로 뛰어들어 독학으로 연마했다는 작가 본인의 자평이 전혀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듯이.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나는 지금 기차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다. 마침 앉은 객실 앞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인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다. 어쩌다 말이 튼 우리는 창가를 스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결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로마의 카피톨리노에 대해, 카이사르에 대해, 마키아벨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는다. 노부인은 열변을 토하는 나의 모습을 슬그머니 바라보며 그 때 그 때 진지하게 답하면서도 눈으로는 "요 건방진 놈 봐라?" 하며 웃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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