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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by parallax view 2009. 2. 4.
서슬이 시퍼렇던 나치의 마지막 시절 군 장교들이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기 연루된 상당수의 군 고위 장교들이 끔찍한 고문을 거쳐 대부분 사형당했다. 이것은 히틀러가 융커 세력에 가한 마지막 일격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 사회에는 아무런 기득권 세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零)"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개봉으로 히틀러 암살작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 동안 밀덕들에겐 상식이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나 쿠르스크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었던 히틀러 암살에 대한 인터넷 자료도 영화개봉과 보조를 맞춰 등록되거나 좀 더 보충되어 올려지고 있다(이에 대한 보다 현장감 있는 설명으로 <발키리 작전의 진행과정 1. 볼프스샨체 총통사령부>를 비롯한 periskop 님의 시리즈를 추천한다.).

독문학자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민음사/2003)에서 발키리 작전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저 한 문단이 전부다. 히틀러의 독재정치와 무모한 전쟁에 반대한 귀족출신 장교들의 반란은 그 역사적 성격과 전후 맥락과 더불어 살펴봐야겠지만, 그것은 해박한 지식과 균형감각을 겸비한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맡기고 여기서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전명 발키리>가 개봉되면서 발키리 작전의 명칭과 관련하여 바그너의 음악 연극 <니벨룽겐의 반지> 중 한 파트인 <발키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글루에서 나왔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발키리의 비상'이 연주되는 장면에 관한 이야기(glasmoon 님의 <왜 바그너인가, 작전명 발키리>)도 나왔고, 바그너와 히틀러 사이의 찌질한 유사성에 대한 간단한 일화도 소개되었다(아울양 님의 <바그너와 히틀러>).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는 바그너와 히틀러 사이의 유사성을 풍부한 독문학 소양으로 제시해주는 입문서라 할만 하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번역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7,80년대 마냥 영어 중역 혹은 일본어 3중역에 따른 오역의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을만큼 번역자들의 어학능력과 인문·자연과학적 소양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마키아벨리 전문가 강정인 씨가 독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얻은 김경희 씨와 공동으로 이탈리아어 원본을 번역한 <군주론>을 개정3판으로 내놓은 것도 그렇고, 스페인어학자 민용태 씨가 번역한 <돈 끼호떼> 등의 출간이 이를 증명한다. 본서의 저자인 안인희 역시 한국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수학한 뒤 다시 모교로 돌아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는 F.실러의 <발렌슈타인 3부작>과 <빌헬름 텔>,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요아힘 C.페스트의 <히틀러 평전> 등을 번역한 전문번역자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제목 그대로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미덕은 풍부한 독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꼼꼼한 자료를 제시하되 최대한 대중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있다. 난해한 어휘를 최소화하고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전달해, 독자들이 바그너와 독일문학 전반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는 인상이 든다. 국내에 바그너 전문가가 거의 없거나 혹은 대중적으로 드러나있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성실함은 무척 돋보인다. 예를 들어 게르만 신화에 대해서는 고전시가집인 <에다>와, <니벨룽겐의 노래> 등 중세 기사문학의 비교종교학적·비교문학적 특징을 설명하고, 바그너를 설명하기 전에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 낭만주의와 관련한 배경설명을 넣음으로써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의 중심은 바그너다. 게르만 신화와 히틀러를 바그너의 전후로 배치한 것은 결국 바그너의 '음악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후세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려주려는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저자가 대단한 바그너 애호가라는 것은 책의 부록에 들어간 '바그너 주요 작품소개'(<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유명한 작품 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의 장인 가수>와 같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바그너 작품들도 요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와 국내에 생소한 도판들에서 잘 드러나 있다. 바그너 작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많은 부분 파시즘의 전조라는 해석에 의존한다. 바그너 스스로 인종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책에서 전달하는 바에 의하면 바그너라는 인간은 당대의 주류 사조를 적극적으로 흡수한 예술가라고 보는 게 더 옳다. 그는 당대 사회주의적 조류 속에서 바쿠닌의 아나키즘 전망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이고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쇼펜하우어의 불교적 허무주의를 흡수한다. 정력적인 작가이자 독재적인 무대연출가로서, 무엇보다도 민족국가의 성립을 지지하는 과격한 민족주의자로서 바그너는 자신이 흡수한 많은 사상을 무대에 집어넣는 재능을 보였다. 그의 작품을 완전히 독립적인 발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의 음악 연극의 뿌리는 그림 형제 등 독일 낭만파였고, 이들 낭만파는 민족주의적 열망 속에서 고대 게르만 신화와 중세 기사문학을 탐색함으로써 '도이치적인 문학'을 꿈꿨기 때문이다(민족주의가 자신의 뿌리를 민족과 전통에서 찾을 때 맞닿는 지점이 설화 등의 민족문학이라는 사실은 19세기 W.B.예이츠의 아일랜드 전설모음이나, 영국 웨일즈 지방의 마비노기온, 일제 강점기 조선의 조선어연구 등의 역사가 증명한다.).

이 지점에서 니체가 <바그너의 경우>에서 보여준, 바그너 음악 연극에 대한 애증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1869년 니체가 바그너를 처음 찾아온 이래 약 7년간 유지된 절친한 관계는 1876년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산산조각난다. 니체가 왜 바그너를 버렸는지, 혹은 바그너가 왜 니체와 틀어졌는지에 관한 설은 분분해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바그너가 "십자가 앞에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젊은 고전문헌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적인 것(이성적, 냉정함, 차분함)과 디오니소스적인 것(감성적, 정열적, 과격함)을 대비시키는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따르면서 바그너의 연극을 분석하였고, 바그너 음악 연극에 이들 간의 조화가 존재한다고 긍정했다. 그러나 점차 인종주의적이고 과격 민족주의 경향을 띄는 바그너 연극들이 <파르지팔>에 이르러 기독교적 순결과 이상에 밀착함에 따라 니체는 바그너의 연극을 포기했다. 니체의 말을 오늘날의 말로 바꾸자면 바그너의 연극에 심취하면 먼저 귀부터 썩고, 개념을 상실하며, '크고 아름다운 것'만 보면 하악하악거리게 된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적 역량 하나만큼은 변함없이 칭찬하고 있다.).

이 '크고 아름다운 것'에 바그너 연극의 힘이 숨어있다. 바그너의 문학적 재량이나 음악적 기교는 활달하긴 하지만 독창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대의 기준에서도 고루했던 순결한 사랑을 고집하는 등 고리타분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연출의 천재로서 거대 서사의 강렬한 이미지를 음악을 동원해 무대 위에서 생산하는 재능은 아주 뛰어났다. 19세기 최고의 블록버스터였던 것이다(여기서 영화 <스타워즈>(1) 성공의 이유를 추리해볼 수 있다.). 특히 고대 게르만 신화의 제의(祭儀)를 모방한 무대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를 중단시키고 작품에 심취시켜 망아(엑스타시)의 경지로 유도하였고 니체도 그 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니체는 바그너 연극 뒤에 숨겨진 게르만 신화의 몰락과 어둠이 낭만주의와 기독교적 종말론과 결합되면서 거대한 데카당스(2)(몰락)의 마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통찰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대비되는 이 파멸과 몰락에 대한 욕망이 서구사회를 지배하면서 결국 사회의 활력을 마비시키고 파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언은 그대로 카산드라(3)의 예언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바그너에 대한 파시즘 혐의는 바로 이 니체의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제의적인 무대 연출에 강한 영향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설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연극적인 요소(과장된 몸짓과 표정, 제의를 모방한 언어선택 등)에 의존하고 있고,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와 같은 거대 행사가 시와 음악과 연극을 하나로 융합한 종교적 축제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와 나치당이 사용한 언어들도 하나같이 전설이나 신화에서 따오고 있는 건 또 어떤가(히틀러 사후의 향방작계인 '발키리' 작전, 히틀러의 동부전선 사령부인 '볼프스샨체'(늑대소굴) 등). 이와 같은 가짜제의의 정치적 악영향에 관해서는 조셉 캠벨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통렬히 비판한바 있다.

사실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내용은 하나하나 간단하게 접근할 수 없을만큼 방대하다. 그런만큼 그 많은 내용을 한 책에 담아내려 하다 보니 다소 중구난방으로 지식이 튀어나오는 경향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바그너의 음악 연극에 대한 비교문학적 탐구가 뚜렷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채 막판에 가서는 헤매는 듯한 인상이 든다. '비교문학으로 접근한 파시즘 비판'이든, 완전한 바그너 예찬이 되든 어느 한 방향을 선택하지 못하는 건 바그너를 마주하다보면 파시즘과 히틀러와도 마주칠 수밖에 없는 독일사 및 독일문학 연구자의 애환과 한계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동시에 저자는 독일에서의 민족국가 형성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배경, 파시즘 자체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한 경향이 있다. 어문학도로서 독일사를 바라보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바그너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 거대 서사와 무대 연출은 문학보다도 오히려 영화와 게임이나 만화 같은 현대 창작물 속에서 적극적으로 수입되었다. 수많은 환빠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태왕사신기>가 그렇고, 한 때 국내 게이머들을 열광케 했던 <창세기전3>(4) 그렇다. 게임의 경우 <오딘스피어>(5)처럼 바그너 연극의 요소를 좀 더 독창적으로 소화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리고 데카당스와 제의가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권력과 만났을 때 어떤 파괴력을 발휘했는가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파시즘이란 단지 소수의 광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비록 주제가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저자는 그 점에 있어서는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파시즘은 인간의 내면에 실존하는 어둠이며, 누구나 그 유혹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태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통 시민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안인희는 책의 결론부에 들어가야 했을 '예술과 현실 : (미적) 취향과 거리두기와 아이러니'에서 독일 낭만파 작가들이 데카당스와 환상으로 도피하는 것에 대한 유혹을 받기는 했어도 그들에겐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균형감각이란 무엇인가. 바로 웃음이다. E.T.A.호프만의 <고양이 무르의 삶에 대한 견해들>에서처럼 예술가 자신마저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유쾌함이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는 비결이다. 그것은 바그너의 작품을 넘어, 예술을 넘어 인간사 전체를 조망할 때 늘 품고 있어야 할 진정한 반지, <니벨룽겐의 반지>에서처럼 파괴와 멸망을 불러오는 반지가 아니라 삶과 활력을 불러오는 보물임이 분명하다.


(1) 스타워즈 : 존 윌리엄스의 장엄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스베이더와 은하제국군이 나치와 파시즘의 은유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서사의 독창성은 없지만 고도로 계산된 '겉멋'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스타워즈>는 대단히 바그너적인 영화다.

(2) 데카당스(Decadence) :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 사조의 상징. 죽음과 파멸에 대한 짙은 우수를 말한다. 본서에서는 독일 낭만주의를 설명하면서 데카당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노발리스의 <푸른 꽃>, 하이네의 시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만 했던 게르만 사회의 절망적인 정서를 이어받아 독일 낭만파의 정서적 줄기를 이루고 있다. 낭만파의 조류는 바그너를 비롯해 에드가 앨런 포, 보들레르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근대 환상문학의 보편적 정서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3) 카산드라 :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트로이 측 등장인물. 트로이의 공주이자 무녀(巫女)로서 일찌감치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다. 시인 아이스킬로스에 따르면 카산드라는 그리스군의 지도자인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넴네스트라의 사주를 받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아가멤논과 함께 살해당한다. 불행을 예언하는 점쟁이의 대명사.

(4) 창세기전 3 : 1999년 소프트맥스에서 출시한 PC용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전체 누적 판매수 70만 카피에 달하는 대작으로 평가받았다. 내용은 이전 시리즈들의 스토리를 이어받았지만 전체적으로 십자군 전설(살라딘)+셰익스피어 비극+나폴레옹 전쟁기의 혼합에 <스타워즈> 등에서 보이는 장면연출로 특유의 '겉멋'을 선보인바 있다.

(5) 오딘스피어 : 일본의 바닐라웨어에서 2007년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2용 RPG.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기본 골격으로 셰익스피어 비극의 대본을 적절히 패러디한,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아예 바그너라는 이름의 용이 출연하기도 한다. 2D 도트 노가다의 걸작으로 불린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안인희 지음 / 민음사
나의 점수 : ★★

바그너에 대한 적절한 입문서.
다소 산만한 구성임에도 근대 독일문학과 바그너에 대한 애정어린 책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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