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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On Liberty)

by parallax view 2009. 2. 1.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편다." 은하 님의 포스팅 <핀트 엇나간 부엉이 사냥>은 헤겔의 고언에서 시작한다. 지난주 모 우익논객과 철거민참사와 관련하여 논쟁을 벌이다가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밀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면모를 부각하자 상대는 밀이 제국주의자에, 빈민혐오증에, 엘리트주의자라고 비난하였다. 당시,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내가 했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바-'자유론'을 읽는 것-를 하지 않은 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서평은 황혼녘에야 날개를 편 부엉이의 울음에 불과하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공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이어받은 사상가이자, <정치경제학 원리>로 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경제학자, 웨스트민스터구 하원의원으로 출마한 자유당 계열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는 세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웠고 여섯살이 되면서 라틴어를 배웠다. 아버지 제임스 밀의 엘리트주의 교수법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직접 어려운 숙제를 받아와 보고서를 쓰고 오후가 되면 아버지와 산책하며 그가 던지는 난제들에 자신이 쓴 보고서를 뒤적여가며 답변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재'였던 밀이 자신의 합리주의 세계에 절망을 느끼면서 시와 서정의 세계로 뛰어들어 구원받은 뒤, 아버지와 벤담에 대한 반동에 서 있던 그는 다시 공리주의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밀이 1859년에 쓴 <자유론>(On Liberty)이다. 그러나 단순히 '탕아의 귀환'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논쟁에서 우익논객이 반론했던 바는 이것이었다.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라"는 말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개인의 가치와 사회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철학자들은 어떤 해답을 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론>을 읽고나서 그의 주장을 살펴보니, 주장 자체를 그리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그가 논쟁을 마무리 지으면서 <자유론>과 <대의정체론> 일부를 떼어서 밀의 제국주의적·엘리트주의적 속성(?)을 애써 폭로하려고 했던 시도도 큰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밀의 주장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밀은 '자유'의 의미를 최대한 좁혀놓는 것으로 시작했다. 일종의 가정을 해놓은 셈인데, 19세기 과학주의의 시대에 '다른 모든 조건을 제외하고'(Ceteris Paribus) 한두 개의 원소만으로 이론을 연구하는 풍조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밀이 규정한 자유란 사상의 자유다. 이것이 사회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영역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단지 그것을 상상하거나 사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적인 처벌을 받거나 도덕적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당시 사회가 아직도 종교간의 대립이 치열했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해 새로운 사상이 범람하던 시대라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밀은 인간의 속성을 예리하게 통찰해낸다. 즉, '양심의 자유'을 내세워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한 이른바 이단이나 신교가 새로운 사회에서는 또다른 권력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역설을 말한다. 이것이 단지 종교만의 문제일까? 이런 상황은 지금의 인터넷 공간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일반의 상식과 다르다고 해서, 좀 더 노골적으로는 내가 감정적으로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특정사고를 미워하는 것을 넘어 아예 제거하려는 습성 말이다. 가까운 예로 반대의견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교조주의와 관료주의의 늪에 빠진 스탈린 지배 이후의 볼셰비키들이 좋은 예다. 또 모 우익논객을 들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주장과 논리에 반대하지만 그의 주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다. 요새 볼테르의 고언이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밀의 통찰은 그 다음단계에서 더욱 빛난다. 모든 사상은 그 대립물이 있어야만 발전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상이 발전과 진보를 거듭하기 위해서는 그에 반대되는 견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종의 헤겔적인 변증법(정-반-합)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헤겔의 변증법이 정-반-합의 피라미드를 통한 역사의 완성을 향한 것과는 다르게, 밀은 어떤 완성이나 종결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 동시에 사상에 관한 절대적 자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진리의 불가능성,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밀이 이 약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제시하는 것이 도덕인데, 밀의 철학 역시 '모범생의 도덕'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제2장 사상과 언론의 자유' 이하의 논의들은 이 논리의 확대재생산에 불과하다. 여기서 잠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아라" 라는 말이 실제 현실에 도입될 때 밀의 자유 개념에 위배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밀이 개인과 사회를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로 보았다고 하면 크게 잘못짚은 것이다. 밀은 <자유론>의 끄트머리에서 "한 국가의 가치는 궁극에 있어서는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가치이다" 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개인의 자유의 한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까지이다. 이 말만으로는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아라" 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진실하게 보인다. 용산 철거민참사처럼 시위대가 화염병과 골프공을 던지며 폭력시위를 하고 주변 건물과 차량에 피해를 준 것은 자유의 원리에 철저히 위배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으로까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사 발생 이전의 철거현장과, 더 이전의 소유자조합과 세입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밀은 금전이 얽힌 상황은 명백히 '사회적 현상'으로서 여기에는 계약 혹은 관계맺은 당사자 간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참사가 발생하게 된 경위에서 단순히 남에게 피해(생명이든 재산이든 혹은 정신적 외상이든)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위배했다고 한다면, 결국 누가 먼저 그 자유를 위배했느냐는 유치한 논의로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이몬 님의 지적 역시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일 것이다.

밀의 주장에도 모순은 발견된다. 그는 한 사회 내지는 민족이 발달하는 과정은 한 개인의 사상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남에게 개선이나 진보를 강요당해선 안 되기 때문에, 문명화된 세계보다 낮은 단계의 민족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외부세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밀이 식민주의 침탈의 선봉격인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하였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지지한 게 아니라 자치를 지지한데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과 명백히 모순된다. 같은 맥락에서 밀이 서문에 제시한 이 부분은 더욱 논란을 가중시키는 것 같다.

"원칙적으로 자유라는 것은, 인류가 자유롭고도 대등한 토론에 의해서 개선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 시대 이전의 사태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인류에게 요행히도 아크바르나 샤를마뉴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그런 인물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할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오히려 이는 비문명화(서구중심의 문명화)된 곳에 대한 자포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밀이 사고실험을 하고 있는 환경은 19세기 영국과 유럽이며, 결국 밀도 별수없는 빅토리아 신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특정한 종교나 사상을 갖게 된 것은 그 지역의 환경과 토양 때문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종교든 간에 동등하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는 걸 밝혀야 할 것 같다. 더욱이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월등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동양이 쇠퇴하게 된 원인을 그들이 서양과 다르게 개방이 아닌 폐쇄를 선택한 탓에 다양성이 갖는 역동적인 변화를 포기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간파한 점도 특이하다.

결국 밀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오류의 신화였다. 그리고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그 무오류의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한 이들이 다름 아닌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밀에게 또다시 엘리트주의자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을텐데, 밀이 두려워한 무오류란 사실 그 시대의 일반적인 관념(관습, 전통 따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직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건넨 아테네 시민들과, 기독교도를 탄압한 로마인들, 신교도를 죽이려드는 가톨릭교도들 모두 현대의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보통사람들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밀은 이런 우매한 대중을 깨우칠 영웅을 기다려야 한다 따위의 '영웅숭배론'에 경도되지는 않았다. 단지,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상과 사상이 서로 충돌하고 갈등할 수 있도록 비판의 문을 열어놓음으로써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한다면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이들에 의해 세상이 더욱 진보해 갈 가능성이 있다는 선에서 멈추고 있다.

이는 교육에 대한 밀의 주장과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 밀은 교육은 어린이의 부모(여기서는 아버지)에게 결정권과 의무가 있으며, 정부는 자신의 힘으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의 자녀를 제외하고는 빈민교육과 구제에 힘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얼핏 국제중, 자사고, 특목고 등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교육 바람을 지지하는 듯 하다. 그러나 밀이 교육에서 추구하는 목적은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이지만, 우리 사교육에서 목적하는 바가 계급과 지위의 세습화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육내용이 여전히 획일적이라는 사실은 밀의 교육관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밀의 교육관에 부합하는 자율경쟁은 스웨덴의 자유주의 교육실험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된다.
(periskop : 사민주의 스웨덴의 급진 자유주의 교육실험)

밀은 사상이 교조화되고 화석화되는 것을 특별히 경계해왔다. 또, 정부기구가 과도하게 팽창하여 관료주의에 물들어 사회를 지배함으로써 갖게 될 해악도 경고했다(이 중 하나가 모든 인재의 관료화다. 재능 많은 청년들을 공무원시험의 길로 인도하는 이 세태에 아주 적합한 것 같다.). 이를 경쟁을 도입한 공기업 민영화로 해석하여 역시 시장이야말로 최고의 반찬 따위의 논리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 역시 관료화되고 교조화되기 쉽다는 점에서 또다른 관료제에 불과하다(내부 혁신과 개량의 효과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핵심은 주민자치이며 지방분권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하여도 많은 것을 고쳐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의 권력이 아직 이 길에서 멀다 해도 말이다.

자유로운 소통의 가능성이 점차 차단되고 있다. 미네르바가 잡혀가고 연구기관의 장이 정부의 독단을 비판하며 자리를 그만두는 시대다. 과거 이명박의 최측근이었다가 내부고발을 이유로 권력의 중추부에서 밀려난 어느 국회의원이 이명박과 옛 동료들에게 <정관의 치>를 돌렸단다. 신료들의 쓰디쓴 조언을 받아들여 최고의 치세를 낳았다는 당 태종의 고사를 본받으라는 충고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이명박에게 헌정하고 싶다.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세상엔 무지무지 많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과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모르는 자유와 자유주의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도 당신은 소통을 거부할 자유만을 선택할 것인가.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나의 점수 : ★★★★

근대 자유주의의 모델.
나는 나의 사상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 이 당연한 말을 들어먹지 않는 세상이 대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