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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3

<변호인, 노무현>에 대한 단상 허지웅의 . 진영논리에 의존해 적을 죽이고 나를 살리는 방식은 결국 나를 죽이고 적을 살리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보다 정확하게는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인다는 것). 허지웅은 여전히 진영논리를 넘어선 '상식'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좌파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게 그의 강점이자 맹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지는 늘 그의 글을 날카롭게 벼린다. 하지만 정치란 당파와 입장, 열정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이를 칼 슈미트의 말을 빌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적대'라고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허지웅의 글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치, 혹은 노무현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욱 더 리버럴한 정치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허지웅을 비.. 2014. 5. 2.
칼 폴라니 : 서평에서 못다한 이야기 0. 앞서 이야기한 칼 폴라니의 (2002) 서평에서 못다한 것들에 대해. 1. 지난 서평에서 묘사된 폴라니는 자칫하면 조합주의자 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을 위험이 있었다. 노동조합-생활협동조합-공정무역-사회적 기업-지방자치단체-진보정당을 엮는 풀뿌리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대안'은 에서 일부 제시했지만, 사실 그건 폴라니가 중점적으로 제시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의 설레발에 발이 묶인 셈이 되었는데 그 정도 착오야 감내하겠다. 2.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의 소책자 에서 제시한 노동조합-산업결사체-소비자협동조합(생협)-사회주의적 자치단체-사회주의 정당의 연계란, 1920년대 당시 유럽 각국에 널리 퍼져있던 노동세력 조직을 최대한 잘 활용하자는 전략에 .. 2009. 4. 15.
대한민국 표류기 처음 허지웅 블로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가 마초인 줄 알았다. 알았다, 가 아니라 정말로 마초였지만, 그가 생각하는 마초와 내가 생각하는 마초 사이엔 말이 풀 뜯어먹는 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소녀 허지웅이라니, 참내, 이런 인간 치고 꼴마초 아닌 놈 없더라. 냉소부터 날리기란 쉬운 일이었다. 그가 와 에서 보여준 순발력과 재치와는 정반대의 이미지였달까. 남성성이란 놈과 재치란 놈이 전선에서 마주 보며 따다다다 따발총을 날려야 할 이유란 딱히 없었는데도, 그의 블로그속 이미지에는 어딘가 작위적이고 악의적인 데가 있었다. 솔직히 그가 이 정도로 유명한 줄도 몰랐고, 유명해질 줄도 몰랐다. 허지웅이란 이름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허지웅의 (허지웅/수다, 2009)는 현역 영화기자이자 .. 2009.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