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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3

"일상생활을 발명하라!"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6.08) 2016. 7. 6.
지젝을 배반해 지젝을 구원한다?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4.28) 지젝을 배반해 지젝을 구원한다? 지젝의 정신분석학적 영화 비평에 대한 이론적 전환을 제안하다 슬라보예 지젝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신랄한 문체 때문에 독자 대중에게 ‘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알려진 철학자다.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했던 시기에 이른바 ‘부르주아 철학’를 전공한 지젝은, 헤겔 철학과 라캉 정신분석학이라는 두 사유체계를 서로 연결해 마르크스를 새로이 읽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지젝은 급진적인 사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고 저 악명 높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갱신하려 한다. 김서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의 「지젝의 정신분석적 영화 비평에 나타난 문제점 및 이론적 지평.. 2016. 6. 20.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1949) 누구나 마음 속에는 자기만의 신전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이 구절만큼 신화를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종족마다, 지역마다 수없이 다른 신앙과 종교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놀라울만큼 공통된 면이 있다. 가까운 예로, 아비 없이 자라다가 기둥 밑의 토막난 칼을 들고 주몽에게 친아들임을 확인받는 고구려 유리왕 전설은 어떨까. 지리적으로 수천 km 차이가 나는 아테네의 건국시조 테세우스의 전설과 똑같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세계 각지의 홍수설화, 예수님의 부활과 디오니소스의 부활은 또 어떤가. 이 유사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단일한 이야기가 종족의 이동과 함께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일까. 아니면 종족간의 접촉과 충돌이 낳은 역사적 산물일까. 혹은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 2008.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