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2 노예 12년 영화 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적확하게 재현한다. 카메라는 고통스런 육체를, 그 얼굴을 주시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안에서 자신을 감추고 타인을 속이는 군상을 드러낸다. 영화는 노예제도는 절대악이기 때문에 붕괴해야 한다는 관점 따위에 속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은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면서 노예가 된다. 그가 자유인이라는 어떤 증명도 '노예'라는 호명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은 '정의'에 대한 영화일까? 극중 떠돌이 목수는 자유와 평등 같은 보편적인 권리는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말조차 백인에게 허락될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감추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도 백인이다(흑인이 찾아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간 금세.. 2014. 5. 2. 필연성에 얽매이기 : 먹고사니즘 오직 노예만이 노동과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대제국에서 노동과 작업이 경멸을 받았다는 견해는 근대 역사가의 편견이다. 고대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직업들은 모두 노예적 본질을 가지기 때문에 노예의 소유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이 이유 때문에 노예제도는 옹호되고 정당화되었다. 노동한다는 것은 필연성에 의해 노예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노예화는 인간 삶의 조건에 내재한다. 사람은 삶의 필연성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필연성에 종속되는 노예들을 강제로 지배함으로써만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노예로의 전락은 운명이며, 죽음보다 못한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길들여진 동물과 비슷한 존재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 제3장 노동, .. 2009. 7. 2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