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드』(켄 올레타, 김우열 옮김 / 타임비즈, 2010)는 한국에서 올해 2월 출간되며 업계의 이목을 받은 책이다. 전 세계 검색 사용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검색 엔진. 광고비를 혁신적으로 낮춤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거둔 애드센스와 애드워즈. UGC의 자유로운 업로드와 무료 다운로드로 올드 미디어 시장에 위협을 가한 유튜브 인수. 거기에 모바일 OS 안드로이드까지 출시해 이동통신사업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찬 기업. 해외 성공 사례라면 눈을 빛내는 국내 경영서 시장에서 구글 만큼 매력적인 기업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직원에게 고액의 스톡옵션을 지급하고 양질의 무료 식사와 마사지를 제공하는 꿈의 기업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져 구직자에게도 선망의 기업이다. 특히 IT 산업에서는 좋든 싫든 따라갈 수밖에 없는 마켓 리더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구글이 좋기만 한 기업일까?
<뉴요커> 수석 칼럼리스트 켄 올레타는 구글의 이모저모를 면밀히 탐색하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구글을 조명함으로써 엉덩이 무거운 올드 미디어 기업들-<뉴욕타임즈>에서부터 글로벌 광고대행사 <그룹M>에 이르기까지-에게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구글이 온라인 마케팅을 선도하고 끊임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이들 올드 미디어 기업들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글 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구글에 호의적인 한편, 그들의 약점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켄 올레타에 의하면, 구글의 모토인 "사악하게 굴지 마라.Don't be evil"는 엔지니어의 기술 중심적 사고방식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공헌하는 게 틀림없다는 순진한 낙관주의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구글은 기업과 대학원이 혼합된 듯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전형이면서, 자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어린애이기도 하다는 우려다. 이는 창립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반(反)관료주의적 성향에 주로 기인한다.
그래서 구글의 성공은 양날의 칼이다. 구글 검색엔진은 "사용자가 검색 엔진을 빨리 떠나도록 해줘야 한다."는 아이디어(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와, "데이터가 곧 힘이다."는 마인드가 결합한 결과다. 구글이 눈부신 성공과 극적인 추락을 겪은 넷스케이프나, 지금도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야후와 다른 이유다. 그러나 구글의 성공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이 영역을 확장할수록 "곰을 깨우고", 일어난 곰들(거대 미디어 그룹과 이동통신사, 출판 그룹과 신문사들)은 구글의 의도가 그들의 모토와는 달리 아주 사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난점은 프라이버시 보호다.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성품을 대량으로 살포해야 하는 올드 미디어 광고와는 달리, 뉴미디어 광고는 데이터의 양적 축적에 기반해 소비자의 심리를 정량화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여지가 늘었기 때문이다(켄 올레타는 구글을 견제하는 거대 미디어 그룹 또한 뉴미디어 광고의 효율성에만 집중한 채 사생활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의 탄생기와 인재들의 활약상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창립자의 영향력이 강한 구글의 특성상, 구글의 신념은 창립자의 신념과 같다. 디지털 괴짜digital freaks의 집단인 여느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창립자들이 사용자 중심적이고 민주적인 온라인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희망에 들뜨는 것을 보면 마치 인터넷 세계의 '프리메이슨단' 같다(페이지, 브린, 에릭 슈미트의 삼두(三頭) 경영 스타일은 과두정적이라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카리스마적 일인 독재'와 비교했을 때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낙관주의는 종종 폐쇄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모든 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제창하지만 2004년 기업 공개 이전까지 자사의 아이디어를 공개하지 않은 게 그렇고,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정부의 요구에 의해 주요 검색 결과를 차단한 사례(천안문 사태 등)가 그렇다. 구글은 결코 이상주의자들의 집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편, "구글을 본받자."는 슬로건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 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구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현직 대통령이 "우리나라도 닌텐도 DS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발 조건이 다르고, 기업 풍토가 다르다. 한국의 경영자나 임원들은 구글의 성과에만 눈이 먼 채, 실제로 구글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에 무관심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자꾸만 '구글 창립자 같은 혁신적인 인재'를 강조하지만, 정작 이들 '인재'가 기업의 경직된 구조 안에 편입되면서 시들어가는 걸 인재 탓에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20% 자유시간'이 구글 아이디어의 풀pool인 건 맞는데, 이걸 능동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상위를 기록하는 나라라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구글이 있기 이전에 넷스케이프와 인텔이 있었고, 이들은 실리콘밸리와 스탠포드, MIT라는 환경의 영향 아래 있다.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이라는 국가간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구축' 운운하자는 게 아니다. 정말 구글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 태동하길 바란다면, 젊은 IT 기업인들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야 한다. 즉, 복지 시스템 구축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 구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IT 산업 지원과는 다른 차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IT 산업의 눈부신 팽창에 눈 멀어 제조업을 소홀히 하는 시각이 고착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구글드』는 웹 2.0 시대의 선도자인 구글이 일으킨 전지구적인 추세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장하준의 지적을 참고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정보통신 기술로 국경이 없어진다'며 무리한 개방을 한다든가, 혹은 '지식 사회니까 제조업보다 첨단 서비스업을 육성하자'는 정책 담당자들이 좋은 사례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서비스업으로 사는 나라는 없다. (서비스업 강국이라는) 스위스·싱가포르 등도 사실은 1인당 제조업 생산이 세계 5위권 안에 든다." (시사IN, "영국을 들썩인 장하준의 직설,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더 변혁적이다"")
나 역시 궁금한 게 있으면 구글링을 하고, 보거나 듣고 싶은 영상·음악이 있으면 유튜브에 들어간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크롬 플러스이고, 약속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 구글맵을 보며, 지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텀블러 같은 소셜 미디어는 구글과 연동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다. 구글은 이미 클라우드 컴퓨팅과 음성인식 시스템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상용화 단계를 넘어선다면, 이제 정말 스마트폰에서 엑셀을 열어 회계 작업을 하고 그 결과를 음성으로 첨부한 글과 함께 지메일이나 트위터를 통해 전송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고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내 쇼핑 데이터에서 패턴을 포착함으로써 내가 '지금' 사고 싶어하는 상품에 대한 광고가 페이스북 담벼락 옆에 버젓이 떠있게 될지 모른다. 과연 구글은 새로운 '악의 제국'이 되는 걸까? '구글드'되는 세계 안에서 경영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용자이자 소비자, 더 나아가 '지구 시민'의 관점에서 '구글드'되는 정보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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