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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List

강용석 단상

by parallax view 2010. 7. 20.
1. 강용석 의원이 한나라당에서 제명될 예정이다. 7.28 재보선을 염두에 둔 게 분명한 제명 결정은 정치권의 생리가 얼마나 냉정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오랫만에 메멘토 리스트 카테고리에 넣는다. 강용석이라는 정치인homo politicus과 이번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논란은 금세 끓어 오르다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망각에 대한 저항에 동참하겠다는 사소한 시도다.

2.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논란을 둘러싼 층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 강용석 개인의 발언 자체에 대한 신뢰도
b) 성희롱 발언과 한나라당과의 연관성
c) 성희롱 발언에 대한 대중의 반응
d) 성희롱 발언과 우리 사회 암묵적 룰과의 관계

a) 강용석 개인의 발언 자체에 대한 신뢰도 : 먼저 중앙일보의 보도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심사위원들은 외모를 보지 않는다." "남자는 다 똑같다. 그날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 따갔을 것이다." "다 줄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 이런 말들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강용석이라는 '정치인'은 무척 경솔한 사람이다. 사담(私談)이었다고는 해도 스스로 공인(公人)이라는 자각이 없다는 얘기다. 후흑(厚黑)과는 거리가 멀다. 뒤집어 말해 강용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그야말로 '건설적 조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상식'이다. 전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하지 않은 이 말들은 정말로 우리의 상식인가?

b) 성희롱 발언과 한나라당과의 연관성 : 보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이 강용석 의원을 서둘러 제명조치하려 드는 것은 물론 선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내홍에 휩싸인 조직이 내막이야 어떻든 PC하지 않은 캐릭터 때문에 해를 입을 수 없는 노릇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는 단호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한나라당의 위계구조와 조직문화가 강용석 의원 개인의 경솔함을 부추기거나 합리화하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조직의 구성원과 조직을 뗄 수는 없는 일이다.

c) 성희롱 발언에 대한 대중의 반응 : 대중은 왜 강용석에게 분노하는가? 그의 PC하지 않음 때문에? 공인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단순히 떡밥을 문 고기의 심정으로 마구 달려들어 자신의 르상티망을 분출하는 것에 불과할까? '대중'이라고 단정짓기 이전에, 이 대중이 누구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적어도 남자들은 아닌 것 같다. 성적 비하의 대상이 된 학생들을 세분화해 보면 '여성+20대+대학생'이라는 코드가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자기 계발을 위해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것인데 정작 심사위원이 참가자의 실력이 아닌 외모를 보고 평가했다니 실망스러웠다”며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중앙일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여기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 원인 중 하나는 자기계발에 대한 믿음이 손상된 데 있다. 이 부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강용석에 대한 아나운서 협회의 항의가 정당한 한편(노컷뉴스, <강용석 의원 발언 관련 아나운서연합회 성명서>),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 정작 화를 내야 할 20대 여성 대학생들은 어떤 기사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기사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정작 분노해야 할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분노하는 이유도 무척 단편적이다.

d) 성희롱 발언과 우리 사회 암묵적 룰과의 관계 : 다시 a)로 돌아가자. 강용석의 발언은 정말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상식인가? 87년 이후를 민주화 국면으로 부르지만 97년 이전까지는 자유주의화 국면이었다고 봐야 할 게다. 그리고 97년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신자유주의화 국면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년의 변화 속에서 정치문화, 조직문화의 자유화(이 '자유화'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함께 한다.)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도 표면적으로는 개선되었다. PC의 기준이 군사독재정부 시절보다는 훨씬 엄격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가 여전히 잠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재밌는 건 강용석의 PC하지 않음을 솔직함과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다. 정말로, PC하지 않는 게 곧 솔직한 것일까? 강용석의 성적 비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상식인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강용석은 자기도 모르게 내부고발자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상식이라면 말이다. 이건 강용석을 제명조치하는 것으로 안도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강용석 개인을 속죄양으로 만드는 것으로 덮어버리면 끝인가? 그러면 성적 비하를 당한 피해자들 역시 보상을 받은 것인가? 무엇보다 자기계발이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을 몸에 품고 있는 20대 대학생들이 현실의 권위주의와 부딪혔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고 있는지가 드러나 있지 않다.

3. "세상이 다 그래."라는 것. 세상 사는 가장 손쉬운 이데올로기다. "'다 그래'를 뒤집어라."는 체제전복의 메시지가 자본주의의 마케팅이 된 세상에서, '다 그래'를 뒤집을 수 없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지금 20대이고 대학생인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권위주의 문화에 절어 있는 한편, 신자유주의적인 자기혁신과 자기책임성(뒤집어 말해, 실패하면 모두 니 책임이란 얘기다.)이 공존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다. 강용석 성희롱 논란은 그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가고 있는 것 같다. 강용석이라는 정치인 하나를 매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화를 내지 못하는 구조에 모두 파묻혀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