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
(leopord 포스팅)
<삼성을 생각한다> 샀습니다
(leopord 포스팅)
김용철(지음)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여형사 님 포스팅)
0. 지난 책광고 릴레이가 이오공감에서 내려간 데 대해, 나는 별 아쉬움은 없다. 단지 좀 궁금하다. 아마도 상업성 게시물로 신고된 듯 한데, 내가 이 책을 광고함으로 인해 얻을 이득은 전혀 없다. 혹시라도 포스팅이 일으킬 어떤 영향(력)이 있다면 그건 이득이냐 손실이냐로 따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기부하는 마음으로 샀다. 저마다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책이 당장 삼성을 극복하는 무기가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우리가 미지의 강력한 힘으로 상상하며 두려워 했던 것, 혹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기에 굳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고 쉽게 냉소하던 것을 밝혀줄 작은 촛불이라고 생각한다. 25만의 삼성 직원들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21세기 삼성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삼성은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차라리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1.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 사회평론, 2010)는 삼성 비리를 고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는 검사를 그만둔 뒤 삼성에 입사해 회사의 실세인 구조조정본부(구조본)에서 약 7년 동안 비자금 조성 및 전달 등 삼성 비리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던 2007년 당시, 그는 코너에 몰려있었고 가슴 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의 용산 때도 그랬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이 함께 하면서 그의 분노는 자기반성과 함께 다듬어진 것 같다(사제단만이 처음 손을 내밀어주었다.). 이 책은 사제단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2. 이 책의 힘은 권력의 한 가운데 있었던 김 변호사의 존재 자체에 있다. 이미 한겨레와 프레시안, 시사IN 등 이른바 진보 매체-그러나 영향력은 적은-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들만 반복되었다면 크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김용철은 매체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헤친다. 그가 구조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조본의 위력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실세는 누구이며 비자금은 어떻게 조성되고 관리되었는지를 사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건에 관계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실명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건 사실상 폭로다. 글쓴이가 자중하지 않는다면 타블로이드 신문의 가십기사로 전락할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신뢰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글쓴이의 냉정하고 차분한 문체 외에도, 사회정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아직도 다 나오지 못한 이야기가 행간의 그늘 밑에 숨어있는 듯 싶다. 예컨대 구조본의 실세인 이학수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그런데, '배신자' 신세임에도 이학수에 대한 미안함을 암시케 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그 점은 또 다른 실세인 김인주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과 비교해 보면 (크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책을 보며 많은 분들이 분개할 부분은 이건희 일가의 정체일 게다.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인용되고 있는 문단을 잠깐 보자면 이렇다.
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 손님들에게는 식전 와인, 식간 와인, 식후 와인으로 상당한 수준의 것이 제공되고, 애피타이저로는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 메인 요리로는 와규(일본에서 키운 소) 등심에 트뤼프 버섯으로 만든 소스가 나온다. 이건희 가족의 테이블에는 프랑스에서 항공기로 공수된 냉장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반면, 다른 테이블에는 냉동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p.227)
(주한 프랑스 대사를 통해 이건희에게 프랑스 대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를 두고 김인주는 "프랑스는 외국 기업의 총수인 회장님께 훈장까지 주는데 우리 정부나 국민은 왜 회장님을 제대로 대접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했다. (p.230)
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에게는 주인보다 더 싼 음식을 제공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무례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건희 일가가 마치 왕족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진정한 쇄신은 요원하다. (pp.230-231)
과거에 회장 비서실이었던 '실'은 구조본으로 명칭이 바뀌었어도 '실'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구조본 임원과 직원들은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삼성의 온갖 부정부패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회장님을 보위하기 위해" 충성을 맹세한 봉건 가신들이다. 실제로 이건희는 삼성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리고 구조본 고위 임원 중에서 제일모직 경리과장 출신인 김인주는 이재용의 후계자 사업을 충심(!)을 다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데, 최근 삼성의 모든 비리가 바로 무리한 승계작업에서 나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행태는 북한의 김정일과 그를 둘러싼 가신집단과 꼭 닮았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이건희 역시 자기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과, 그의 묘한 기벽奇癖이다.
이건희는 사장단 회의에서 "나(이건희)에게 큰 약점이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 습관은 몹시 독특한데, 주로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미리 녹화해 둔 다양한 프로그램을 며칠씩 계속 보기도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 그는 자기 몸으로 이것저것 시험하는 일도 좋아한다. 이를테면, 밥을 안 먹고 얼마나 버티는지를 시험하는 식이다. (p.232)
그러나 김용철도 말했듯이, 이건희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회장의 지시가 절대적이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권력에 가까워야만 출세할 수 있는 수직적인 조직구조에서 기업이 혁신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이 그렇게도 '혁신'을 말하지만, 정작 혁신되어야 할 것은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희의 발언은 그저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바꿀 생각이 없는' 전제군주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100만 원짜리 옷을 만들어봤자 누가 입겠느냐" (p.252)고 하는 둘째 딸 이서현이나,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p.253)는 이재용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또, 이건희 가족 내의 분란을 통해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한다.
4. '글로벌 기업' 삼성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건희 일가가 아니라 가신집단이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학수나 김인주 등 권력의 실세들이 이건희의 눈을 가리면서 회사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건희에게, 또 이재용(혹은 이부진)에게 이학수와 김인주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또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이건 리더십을 포함한 조직의 문제다(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우석훈의 <조직의 재발견>의 후속편으로 볼 수도 있겠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인용하자면, 삼성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악마의 맷돌'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맷돌에 끊임없이 짓이겨지며 자기를 소모한다. 이건희와 그의 일가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봉건적 세습구도를 붙잡고 있는 한, 이학수와 김인주의 자리에 공백은 없을 것이다. 삼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또 있다. 바로 '무노조 경영'이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이 강한 삼성은 공장을 주로 해외에 두고 있어, 국내에서와 같은 방법(노동자 회유 및 협박, 노조 신고 하루 전에 어용노조 설립 등)으로 노조 설립을 예방(?)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석훈이 <88만원세대>에서 밝혔듯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제, 특히 재벌은 각종 변동에 취약하다. 삼성은 점증할 노동자 파업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5. 오늘의 삼성은 IMF 구제금융기에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 국내의 고만고만한 재벌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삼성은 정권의 공식·비공식적인 지원에 힘입으면서 구조조정과 비자금을 통해 영향력을 증가시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책임은 이건희와 삼성 고위 간부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방관하고 더러는 감싸안았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게도, 또 물질만능주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버린 우리 모두-이 표현이 여전히 껄끄럽고 부담스럽다 하더라도-에게 있다. 비리의 공범인 김용철 또한 피해갈 수 없다. 그가 2005년에 한겨레 비상근 기획위원으로 있으면서 썼던 글이 책에 인용될 때마다, "당신은 이 때엔 삼성에 대해 가만히 있다가 왜 뒤늦게 입을 열었나" 하는 원망감이 들기도 했다. 김용철이 양심고백을 하겠다고 사제단에 밝혔을 때 사제단 원로인 김병상 신부에게 호되게 야단맞은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p.36) 하지만 김용철의 폭로가 우리 사회의 추악한 면을 환히 드러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김용철이 '배신자'가 될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사제단과 함께 하기는 커녕 삼성에서 주는 돈을 조용히 받으며 '좋은 아빠' 행세를 했을지도 모른다. 김용철은 거대한 인맥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전례다.
6. 삼성개혁은 곧 재벌개혁이고, 여기에 검찰개혁 또한 필수이다. 정치인, 관료, 사법기관, 언론, 재벌이 혈연과 학연, 지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한 지금, 삼성을 개혁할 길은 여전히 먼 것만 같다. 또, 우리나라 기득권의 선민의식과 권력욕이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할 때마다 희망을 잃고 냉소하기도 더욱 쉬워진다(노무현에 대한 기득권층의 증오를 생각했을 때, 비록 정책은 엇나갔어도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의 연민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삼성 비자금이 정부에 회수되어 대학 등록금으로 쓰인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고통받지 않으리라는 글쓴이의 인식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또한 선언에 그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삼성을 극복하는 무기가 아니다. 그저 작은 촛불이다. 글쓴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 이병주는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말했다. 내가 삼성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들은 역사도, 신화도 아닌 야사로만 전해지게 됐다. (p.8)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를 거부한 시점에서, 이 책의 판매부수는 결정된 것 같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힘든 일이었겠지만, 책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팔려나가고 있다. 야사의 힘이다. 권력은 십 년을 못 가고, 아마도 재벌의 힘은 그보다 더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이야기는 훨씬 더 오래 간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소년의 외침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아마 다들 짐작하실 게다. 그러니까 더 외쳐보자.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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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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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지음)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여형사 님 포스팅)
0. 지난 책광고 릴레이가 이오공감에서 내려간 데 대해, 나는 별 아쉬움은 없다. 단지 좀 궁금하다. 아마도 상업성 게시물로 신고된 듯 한데, 내가 이 책을 광고함으로 인해 얻을 이득은 전혀 없다. 혹시라도 포스팅이 일으킬 어떤 영향(력)이 있다면 그건 이득이냐 손실이냐로 따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기부하는 마음으로 샀다. 저마다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책이 당장 삼성을 극복하는 무기가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우리가 미지의 강력한 힘으로 상상하며 두려워 했던 것, 혹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기에 굳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고 쉽게 냉소하던 것을 밝혀줄 작은 촛불이라고 생각한다. 25만의 삼성 직원들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21세기 삼성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삼성은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차라리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1.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 사회평론, 2010)는 삼성 비리를 고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는 검사를 그만둔 뒤 삼성에 입사해 회사의 실세인 구조조정본부(구조본)에서 약 7년 동안 비자금 조성 및 전달 등 삼성 비리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던 2007년 당시, 그는 코너에 몰려있었고 가슴 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의 용산 때도 그랬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이 함께 하면서 그의 분노는 자기반성과 함께 다듬어진 것 같다(사제단만이 처음 손을 내밀어주었다.). 이 책은 사제단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2. 이 책의 힘은 권력의 한 가운데 있었던 김 변호사의 존재 자체에 있다. 이미 한겨레와 프레시안, 시사IN 등 이른바 진보 매체-그러나 영향력은 적은-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들만 반복되었다면 크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김용철은 매체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헤친다. 그가 구조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조본의 위력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실세는 누구이며 비자금은 어떻게 조성되고 관리되었는지를 사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건에 관계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실명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건 사실상 폭로다. 글쓴이가 자중하지 않는다면 타블로이드 신문의 가십기사로 전락할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신뢰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글쓴이의 냉정하고 차분한 문체 외에도, 사회정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아직도 다 나오지 못한 이야기가 행간의 그늘 밑에 숨어있는 듯 싶다. 예컨대 구조본의 실세인 이학수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그런데, '배신자' 신세임에도 이학수에 대한 미안함을 암시케 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그 점은 또 다른 실세인 김인주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과 비교해 보면 (크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책을 보며 많은 분들이 분개할 부분은 이건희 일가의 정체일 게다.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인용되고 있는 문단을 잠깐 보자면 이렇다.
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 손님들에게는 식전 와인, 식간 와인, 식후 와인으로 상당한 수준의 것이 제공되고, 애피타이저로는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 메인 요리로는 와규(일본에서 키운 소) 등심에 트뤼프 버섯으로 만든 소스가 나온다. 이건희 가족의 테이블에는 프랑스에서 항공기로 공수된 냉장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반면, 다른 테이블에는 냉동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p.227)
(주한 프랑스 대사를 통해 이건희에게 프랑스 대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를 두고 김인주는 "프랑스는 외국 기업의 총수인 회장님께 훈장까지 주는데 우리 정부나 국민은 왜 회장님을 제대로 대접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했다. (p.230)
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에게는 주인보다 더 싼 음식을 제공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무례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건희 일가가 마치 왕족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진정한 쇄신은 요원하다. (pp.230-231)
과거에 회장 비서실이었던 '실'은 구조본으로 명칭이 바뀌었어도 '실'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구조본 임원과 직원들은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삼성의 온갖 부정부패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회장님을 보위하기 위해" 충성을 맹세한 봉건 가신들이다. 실제로 이건희는 삼성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리고 구조본 고위 임원 중에서 제일모직 경리과장 출신인 김인주는 이재용의 후계자 사업을 충심(!)을 다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데, 최근 삼성의 모든 비리가 바로 무리한 승계작업에서 나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행태는 북한의 김정일과 그를 둘러싼 가신집단과 꼭 닮았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이건희 역시 자기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과, 그의 묘한 기벽奇癖이다.
이건희는 사장단 회의에서 "나(이건희)에게 큰 약점이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 습관은 몹시 독특한데, 주로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미리 녹화해 둔 다양한 프로그램을 며칠씩 계속 보기도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 그는 자기 몸으로 이것저것 시험하는 일도 좋아한다. 이를테면, 밥을 안 먹고 얼마나 버티는지를 시험하는 식이다. (p.232)
그러나 김용철도 말했듯이, 이건희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회장의 지시가 절대적이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권력에 가까워야만 출세할 수 있는 수직적인 조직구조에서 기업이 혁신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이 그렇게도 '혁신'을 말하지만, 정작 혁신되어야 할 것은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희의 발언은 그저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바꿀 생각이 없는' 전제군주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100만 원짜리 옷을 만들어봤자 누가 입겠느냐" (p.252)고 하는 둘째 딸 이서현이나,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p.253)는 이재용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또, 이건희 가족 내의 분란을 통해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한다.
4. '글로벌 기업' 삼성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건희 일가가 아니라 가신집단이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학수나 김인주 등 권력의 실세들이 이건희의 눈을 가리면서 회사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건희에게, 또 이재용(혹은 이부진)에게 이학수와 김인주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또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이건 리더십을 포함한 조직의 문제다(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우석훈의 <조직의 재발견>의 후속편으로 볼 수도 있겠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인용하자면, 삼성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악마의 맷돌'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맷돌에 끊임없이 짓이겨지며 자기를 소모한다. 이건희와 그의 일가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봉건적 세습구도를 붙잡고 있는 한, 이학수와 김인주의 자리에 공백은 없을 것이다. 삼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또 있다. 바로 '무노조 경영'이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이 강한 삼성은 공장을 주로 해외에 두고 있어, 국내에서와 같은 방법(노동자 회유 및 협박, 노조 신고 하루 전에 어용노조 설립 등)으로 노조 설립을 예방(?)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석훈이 <88만원세대>에서 밝혔듯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제, 특히 재벌은 각종 변동에 취약하다. 삼성은 점증할 노동자 파업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5. 오늘의 삼성은 IMF 구제금융기에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 국내의 고만고만한 재벌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삼성은 정권의 공식·비공식적인 지원에 힘입으면서 구조조정과 비자금을 통해 영향력을 증가시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책임은 이건희와 삼성 고위 간부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방관하고 더러는 감싸안았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게도, 또 물질만능주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버린 우리 모두-이 표현이 여전히 껄끄럽고 부담스럽다 하더라도-에게 있다. 비리의 공범인 김용철 또한 피해갈 수 없다. 그가 2005년에 한겨레 비상근 기획위원으로 있으면서 썼던 글이 책에 인용될 때마다, "당신은 이 때엔 삼성에 대해 가만히 있다가 왜 뒤늦게 입을 열었나" 하는 원망감이 들기도 했다. 김용철이 양심고백을 하겠다고 사제단에 밝혔을 때 사제단 원로인 김병상 신부에게 호되게 야단맞은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p.36) 하지만 김용철의 폭로가 우리 사회의 추악한 면을 환히 드러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김용철이 '배신자'가 될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사제단과 함께 하기는 커녕 삼성에서 주는 돈을 조용히 받으며 '좋은 아빠' 행세를 했을지도 모른다. 김용철은 거대한 인맥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전례다.
6. 삼성개혁은 곧 재벌개혁이고, 여기에 검찰개혁 또한 필수이다. 정치인, 관료, 사법기관, 언론, 재벌이 혈연과 학연, 지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한 지금, 삼성을 개혁할 길은 여전히 먼 것만 같다. 또, 우리나라 기득권의 선민의식과 권력욕이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할 때마다 희망을 잃고 냉소하기도 더욱 쉬워진다(노무현에 대한 기득권층의 증오를 생각했을 때, 비록 정책은 엇나갔어도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의 연민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삼성 비자금이 정부에 회수되어 대학 등록금으로 쓰인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고통받지 않으리라는 글쓴이의 인식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또한 선언에 그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삼성을 극복하는 무기가 아니다. 그저 작은 촛불이다. 글쓴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 이병주는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말했다. 내가 삼성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들은 역사도, 신화도 아닌 야사로만 전해지게 됐다. (p.8)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를 거부한 시점에서, 이 책의 판매부수는 결정된 것 같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힘든 일이었겠지만, 책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팔려나가고 있다. 야사의 힘이다. 권력은 십 년을 못 가고, 아마도 재벌의 힘은 그보다 더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이야기는 훨씬 더 오래 간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소년의 외침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아마 다들 짐작하실 게다. 그러니까 더 외쳐보자.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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