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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a Song

패닉, <눈녹듯>

by parallax view 2009. 10. 28.


GMF는 못 갔지만, 이야기만 들어봐도 이적 무대는 정말 최고였나 보다.

패닉 4집에 수록된, <눈녹듯>을 알게 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나에게 패닉은 3집까지였고, 여느 또래와 비슷하게 카니발과 긱스를 들으며 자랐다. 중딩 때 유행했던, 대충 <스타통신> 비스무레한 이름이 붙은 '찌라시'에 이적이 삐죽삐죽 솟아오른 머리를 하고 김진표가 제법 불량스런 척을 했던, 그 아주 촌스러운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그 옆 페이지엔 개리와 길이 미애와 함께 X-teen이란 힙합그룹 비스무레한 걸로 소개된 것 같다. 그룹의 이름은 '허니'. 허니패밀리의 전신이라는 '나의 마음'님의 지적으로 수정. 맞다, 리쌍 in 허니패밀리...).

패닉을 90년대 중반, 실력으로 오버그라운드로 치고 올라온 '이단아'로 보던, 대중음악이란 장사판에서 '적당한 반항심'과 '적당한 진보성'을 팔아먹은 장사꾼으로 보던, 패닉이 90년대의 자유화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데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패닉은 화끈한 '변혁'이 되진 못했어도, 세상에 대한 불만을 영리하고 세련되게 표현하며 자기만의 자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달팽이>와 <기다리다>에서 드러난 서정성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서서히 익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적도 팬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 시간을 말하기엔 여전히 어리지만, 그럼에도 그 때의 소년과 소녀는 더 이상 소년과 소녀가 아니다.

자기회고적인 경향이 강한 이적의 가사들은 솔직히 좀 유치하다. 보컬도 사실 썩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적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 여느 또래와 비슷하게, '동지'를 발견한 기분 때문일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자주 흔들리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한편, 시간이 패닉의 재기를 마모시켜가는 만큼 서정은 깊어져가고, 언제부터인가 이적의 노래는 자주 듣지 않아도 너무 당연하게 귓가에 맴도는 그런 노래가 되었다. <시간을 찾아서>와 '나무로 만든 노래' 앨범이 내겐 그렇다.

<눈녹듯>은 마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시작한다. 눈 오던 날, 헤어진 연인을 잡기 위해 그녀의 집 앞에 쌓인 눈에 글을 쓴다. 다음 날, 햇살이 짙어지는 만큼, 마음의 그늘도 짙어진다. 물방울을 눈으로 되돌릴 수 없듯이, 시간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눈녹듯>은 슬픈 노래지만, 마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불러야 한다. <눈녹듯>은 그런 노래다.

그 밤 눈이 펑펑 왔지. 빛의 조각들처럼
골목 가로등 아래 반짝이는 눈 속에
나는 두 손 모아 빌었지

그리 아름답던 그 눈이 모두 녹을 줄이야
구두 위에 어지럽게 묻어 있는 얼룩이
하나 남은 흔적일 줄이야

난 밤이 새도록 너의 집 앞에
사랑한다고 돌아오라고 글씨를 썼지만
해는 높이 떠오르고 나의 맘은 녹아 내리고
가는 자전거 바퀴에 흩어졌던 걸

그리 아름답던 그 눈이 모두 녹아버린 날
우리 함께 한 일도 마치 없던 것처럼 작은 물방울 되어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지 그저 수줍은 내 고백은 눈물로
누군가의 발에 밟혀 흙탕물로 그리고 어제와 똑같이 뒤덮혔지 사람들로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마음과 같은 사람 아마 있겠지
그 사람 역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흔적 찾아 방황하고 있겠지

난 밤이 새도록 너의 집 앞에

널 사랑한다고 내게 다시 돌아오라고 내 맘 가득 담아 흔적을 남겼지만

해는 높이 떠오르고 나의 맘은 녹아 내리고
가는 자전거 바퀴에 흩어졌던걸

그리 아름답던 그 눈이 모두 녹아버린 날
우리 함께 한 일도 마치 없던 것처럼 작은 물방울 되어

내겐 마지막 몸부림과 같았던
어느 눈 오던 날


가사출처 : inMu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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