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회의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 기본소득을 넘어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기>(오월의봄, 2022)는 기본소득 등의 '기본론'이 18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분기마다 분출했던 인민 대중의 불안정한 삶에서 비롯하며, 그것이 갖는 즉자성과 보수성은 자본주의의 논리와 역사성, 다시 말해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부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순히 맹목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기본소득론이 역사적으로 내세웠던 "기본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임노동제의 정착, 복지정책의 형성, 소득세제를 비롯한 조세제도의 확대와 같은 형식으로 반영되면서 인민 대중의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여기서 복지정책 또는 '사회적인 것'의 발명이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 포섭과 연관된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적은 분량 안에서 주제의식을 소화해야 할 필요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나선형 전진에 부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다시금 기본론이 남한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제출되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알려주는 징후다.
이 책은 기본소득론을 역사적·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미덕이 있는 반면, 결론에 이르러서는 관행적으로 '민주주의'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분석의 힘이 급작스럽게 떨어지는 듯하다. 저자의 주장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기본론의 요구를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정적으로 수용하는 민주주의 체제란 코포라티즘 체제에 다름아니다. 국가장치를 매개로 한 계급 간 타협인 코포라티즘 체제가 반드시 민주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기본소득론자들이 국가에 대해 이중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것(급부를 지급할 때는 강한 국가를, 그 밖의 개입에 대해서는 약한 국가를 요구)은 옳게 지적했지만, 국가장치의 효율성에 집중한 나머지, "국가는 누가 운영하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괄호 친 결과일 것이다. 이를 대신하는 말이 '민주주의' 또는 '공화국'일 테지만, 오늘날 민주주의가 처한 곤경을 생각하면 충분하지 않은 답변이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이 갖는 곤란함은 경제를 곧바로 정치로, 또 정치를 곧바로 경제로 번역할 수 없다는 근본적 난점에 따른 것이다. 즉 둘을 매개(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면 '약호전환')하는 제3항이 필요하다. 이 제3항은 바로 정당,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면 '현대의 군주'인 정당이다. 이 자리는 현재 남한에서 부재한다(그렇다면 기본소득당은 무엇일까? 기본소득당은 의고적으로 표현하자면 인민주의 정당일 뿐이다. 인민 대중의 즉자적인 고통에만 주목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점에서는 정파연합정당인 정의당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노동당이나 진보당도, 녹색정치를 제시하는 녹색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김공회의 기본소득 비판은 '당의 부재'라는 동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그와 같은 한계를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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