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세르주의 <러시아혁명의 진실>(황동하 옮김, 책갈피, 2011) 완독. 원제는 Year One of the Russian Revolution이다('러시아 혁명 첫해'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러시아혁명의 진실'이라는 제목은 전형적인 반공주의적 '폭로'를 연상시켜서 거북스럽다). 10월 혁명의 배경(농노제의 해체와 러시아 자본주의의 형성, 1905년 혁명, 1917년 2월 혁명)부터 10월 혁명,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1918년 7~8월의 위기와 적색 테러, 독일 혁명과 전시공산주의까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년을 다룬다(실제의 서술 범주는 1919년 초까지다).
세르주는 이 책에서 혁명이란 음모나 쿠데타가 아니라 빼앗기고 고통 받는 인민의 욕망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언제나 혼란과 오류 속에서 벌어지는 파국이자 구원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볼셰비키와 노동계급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파국을 마주하고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분투했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설령 '통찰력 대장' 레닌이라 해도). 세르주가 말했듯이 "나중에 법칙의 효력을 갖게 되고, 그 법칙에 따라 공산당이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시한다는 식의 이론을 만들어 낸 사람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해 둬야겠다. 이 이론은 뒤에 일상적인 필요에 의해 강요됐을 뿐이다(376쪽)".
혁명은 반혁명 세력과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으로 고통받았고, 볼셰비키와 노동계급은 이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혁명은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남았다. 예전이라면 혁명의 생존이라는 기적이 혁명 국가의 방어라는 목표 속에서 사그라든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의 비극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스탈린주의라고 명명되는 입장조차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게 보다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명 국가의 방어는 '스탈린주의의 폭압'이나 '변질' 같은 말로 간단히 비난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세르주가 당에 대한 충심을 고수했던 1920년대 후반에 쓰인 글을 묶은 만큼 <한 혁명가의 회고록>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이때의 세르주는 체카의 활동을 비롯한 적색 테러를 적극 옹호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몇 년 동안 집어들었다 돌려놓았던 책이다. 나는 정말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당장 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앞부분만 훑어보다 내려놓곤 했다. 그럼에도 계속 눈에 들어왔으니, 나는 러시아 혁명을 교조주의와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정세 속에서(그리고 역사 속에서)' 사고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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