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재개발3

"임대인들을 타도하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라!"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6.13) "임대인들을 타도하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라!"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예술적 개입과 실천을 보다 소설가 정지돈의 단편 「건축이냐 혁명이냐」(『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 문학동네, 2015)는 1960~1970년대 뉴욕의 도시개발과 동시대 서울의 도시개발이 진행된 양상을 교차시켜 보여 준다. 소설은 “한때,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미쳐 있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그런 전 세계적인 광기가 세계를 휩쓴 육십년대 후반(『수상작품집』 29쪽)”에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으리라 짐작했던 두 개의 세계(68혁명을 전후한 뉴욕과 개발독재 시기의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이 똑같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몸짓에 다름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소설의 제.. 2016. 7. 7.
두리반 대토론회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이번이 두리반에서 열리는 마지막 토론회가 될 것 같다.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두리반 투쟁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도시 재개발 반대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토론회에서든 딱부러지는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투쟁이 바로 정당화 과정이라는 것을 떠올려야 할 게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위치에 서서 운동의 '보편성'을 주장하기보다, 운동이 발생하는 맥락을 현장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위치지워진) 주체들의 상황적 지식을 파악해야 할 때다. 문화운동(혹은 문화정치학)과 도시 재개발 반대 운동, 문화와 정치경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이자, 수많은 주체들이 마주치는 '사건'으로서의 두리반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 2011. 6. 27.
도시 재개발 그리고 지배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에 반대하기 1.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인가, 아닌가. 차라리 언어는 곧 사고라고 해야 할 게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언어를 벼리기엔 너무 많은 정보와 사건이 발생하고 소멸해, 이들을 하나하나 붙잡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이 뒷북이고, 그런 점에서 모든 글쓰기는 뒷북일 것이다. 2. 두리반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입장에서, 두리반이 도시 재개발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거슬리지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권리금을 매개로 한 입주와 지구 단위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두리반이라는 사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리반 투쟁이 다른 재개발 지역에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잉여들'과 함께 싸우라는 것 뿐인가? 만약 그 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두리반 투쟁에 함께 한 사람들은 두리반.. 2011.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