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2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신형철의 글이 무척 인상깊어 그대로 받아적는다. 그는,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스티브 매퀸의 '삶의 의미' 3부작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자신이 노예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때만 주인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이 이상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영화다, 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이 순간, 신형철은 청년 헤겔학파 혹은 헤겔 좌파처럼 보인다. 이런 관념적인 급진성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것이 마르크스의 과제 아니었을까. 오기로 생각되는 부분은 수정했다. ======================================================================================.. 2014. 5. 3. 노예 12년 영화 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적확하게 재현한다. 카메라는 고통스런 육체를, 그 얼굴을 주시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안에서 자신을 감추고 타인을 속이는 군상을 드러낸다. 영화는 노예제도는 절대악이기 때문에 붕괴해야 한다는 관점 따위에 속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은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면서 노예가 된다. 그가 자유인이라는 어떤 증명도 '노예'라는 호명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은 '정의'에 대한 영화일까? 극중 떠돌이 목수는 자유와 평등 같은 보편적인 권리는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말조차 백인에게 허락될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감추지 않는다. 솔로몬 노섭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도 백인이다(흑인이 찾아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간 금세.. 2014. 5.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