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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끝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by parallax view 2010. 3. 18.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 신해욱, <끝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이번 <창작과비평> 봄호에서 신형철의 평론인 <가능한 불가능 : 최근 '시와 정치' 논의에 부쳐>에 삽입된 신해욱의 시.

나 또한 신형철의 말대로(어쩌면 또 다른 인용인지도 모르겠지만.) "미지의 타자에게 나의 신체를 내어주고 무의식을 개방하는 '접신'의 순간들"을 긍정해오기만 하지는 않았을까.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피를 흘리고,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을 느끼거나, 혹은 슬픔 그 자체이거나.).

얼마 전 김예슬에 대한 촌평에서 박가분 님과 이야기하다가(leopord, <잡담>) 나 역시 '불가능한 가능성'에 매몰되어 '가능한 불가능성'을 무시하진 않았을까.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 그녀와 손잡고 거리로 나가겠습니다."(진은영) "공기 속에서 온통 비린내가 납니다. 없는 문이라면 그려서라도 열어젖혀야겠습니다."(신해욱) 탄생하지 않은 그것과 손잡고 걷겠다는 것. 없는 문을 그려서 그것을 열겠다는 것. 이것들이 바로 '가능한 불가능'들이다. 모두가 할 수 있지만 문학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게 문학이 모르는 정치의 착각이고, 모두가 못하는 것을 문학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가 모르는 문학의 비밀이다. (p.386)

문학이, 시가, 언어가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순간, "리얼리스트가 되자! 불가능을 요구하라!"라는 모순된 선언이 이해된다. 불가능이 가능과 교환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 모순으로 공존하는 관계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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