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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19

인생사용법 『인생사용법』(2012, 문학동네) 2015년 12월 중순에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을 다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챕터씩 모두 99챕터를 매일 거르지 않고 읽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못 읽는 날도, 읽기를 미루는 날도 있다 보니 몰아서 읽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읽으려 했다. 페렉은 『인생사용법』을 침대에 엎드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며 썼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가 사물의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파고들 때 이를 제대로 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사물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이기도 하다. 페렉은 마르크스에 이어 상품의 세계로 내려간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물에서 삶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다시 인물과 사물을.. 2016. 1. 3.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2012)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읽고 별 할 말 없다면서 페이스북에 본문을 길게 인용하다 휴대전화 키패드로 쓰는 게 짜증나 아예 인상적인 문단 몇 개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적다 보니 저자가 거듭 강조했던 일을 나 또한 반복함을 떠올렸다. 저자에 따르면 읽는다는 것은 늘 불가능한 일이고 우리는 읽고 나면 미쳐버리므로 읽은 내용을 망각하거나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광기와 자기방어 모두를 물리치는 한편, 결코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읽는다는 것은 늘 다시 읽는 것이고 고쳐 읽는 것이며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문학의 범위는 아주 넓고 우리의 혁명은 바로 읽고 쓰는 데 달렸다. 오직 읽고 쓰는 것만이 혁명적이다. .. 2013. 4. 28.
소설 단평 단 한 번이라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나는 없었다. 신앙을 갖고 있지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배워왔지만. 적어도 구원이 내 몸에 뚜렷이 새겨져 있음을 알지 못하는 한, 나는 구원을 모를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교코』(무라카미 류, 양억관 옮김 / 민음사, 1997)에는 몸에 구원을 새긴 소녀가 살고 있다. 여덟 살. 한 미군에게 배운 춤이 그녀를 구원했다. 그리고 스물 하나. 구원을 가르쳐 준 사람을 찾아 뉴욕으로 떠났다. 소설은 영화 를 재구성한 것인 듯하다. 무라카미 류 소설은 처음이다. 그가 말한 대로 『교코』에는 섹스도 마약도 없다. 사건은 평이하며, 로드무비 혹은 성장영화의 전형을 따른다. 소설은 약한 서사를 보충하기 위해 ‘시선’을 동원한다. 교코를 만나 사랑하게 된.. 2010. 6. 18.
진산 무협 단편집 :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 진산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2004년 에서 중문과 전병준 교수가 연재하던 ‘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에서였다. 여성무협작가라는 포지션도 특별했지만, 기존 무협소설과는 다르게 인물의 내·외적 갈등을 섬세하게 끌어냈다는 평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무협소설도 시대배경이나 설정을 소위 순문학과 달리할 뿐이지, 갈등구조나 플롯에서는 오히려 굉장히 뚜렷한 경향이 있다. 적과 칼을 맞대고 싸운다는, 뚜렷한 적대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마다 싸움의 이유가 분명해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따라가는 한편으로 그 변두리의 이야기를 꾸며내기에도 좋은 장르다. 무협소설계의 절대고수 김용(金庸)이 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음에도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고도로 복잡한 갈등구조에 있다. 무협소설이 중국(.. 2009.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