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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100114

by parallax view 2010. 1. 15.
1. 이제 더 이상 091231... 등의 날짜를 쓸 수 없다. 100114(혹은 011410)라는 숫자는 여전히 낯설다.

2.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이미 1950년대의 철학은 과학의 진보와 괴리되었다고 비판했다. 데카르트가 갈릴레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당시의) 현대 철학은 근대 과학의 분화와 발전이 근대 철학의 자극이었고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으며, 과학과의 끈을 상실하며 스스로 고립됨에 따라 현실과의 접점 또한 옅어진다고 보았다. 작고했지만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철학자-새삼 생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죽은 철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사유에서 맴돌고 있다-아렌트의 비판은 지금 여기에도 오롯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3. 마찬가지로 종교를 생각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철학이 없다던가 수입된 식민주의 철학만 난무한다며 개탄한다. 그 원인은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철학자 자신조차 자신이 외는 철학의 본류를 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맑스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종교(종종 그리스 철학으로 알려지곤 한다.)를 알아야 하며, 아감벤을 말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을, 아렌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야 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비록 단편적이지만 서양 철학의 두 가지 본류-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를 언급한 것이 타당한 이유다. 박권일이 말한대로, 신학자야말로 최후의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신학을 영성과 자기긍정의 자기개발서를 넘어서 바라볼 때에야 철학이 보일 게다. 한편,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철학의 범위가 '서양 철학' 뿐이라는 것도 비극이다. 동양 철학에 대한 이미지가 '철학원'의 내일 운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비극은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다. 게다가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을 넘나든다는 발상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화입마에 빠졌을지도 상상해 본다.

4. 과학-철학-종교. 철학이 메타담론으로서 제 구실을 할 유일한 방도는 과학과 종교를 매개하는 것.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셋은 신삼위일체도 아니고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도상에 있지도 않다. 이미 현대 과학은 우주(자연)와 인간이라는 두 갈래 숲 속 깊숙히 파고들었다. 만약 이 셋을 억지로 융합하려고 할 때 가장 쉽게 도출되는 것들이 바로 창조과학이나 속류화된 진화심리학 따위가 아닐까. 차라리 이 셋이 서로 분열하고 다투고 분쟁하는 게 더 나을 게다. 합의되는, 수렴되는 소통이란 환상이다. 그렇다면 더욱 더 다투라. 소란을 일으키라.

5.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철학이 그 자체만으로는 사유를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이 무슨 야밤의 개똥철학이란 말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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