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umfabrik

누구나 비밀은 있다: 양들은 섹스머신을 꿈꾸는가

by parallax view 2004. 8. 18.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써놓은 걸 재탕...-_;;;



"누구나 비밀은 있다." 영화 제목을 지을 때 문장보다는 단어가 더 쉽게 다가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잡는 작업이며, 영화에서 프레임을 통해 보여주려하는 그 '무언가'를 미리 암시케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문장보단 단어가 더 외우기 쉬우니 대중이 영화에 대해 접근하기가 더 편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굳이 제목을 문장으로 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던가 '춤추는 대수사선' 뭐, 이런 식인데 '누구나 비밀은 있다'도 대중 그런 플로우를 밟는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라는 게 영화의 요지인 셈인데, 그런 비밀을 생산해 내는 남자를 둘러싸고 비밀을 개별적으로 그 남자와 '공유'하는 한 가족의 스토리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

자유연애주의자 미영(김효진 분), 공부 밖에 모르는 언니 선영(최지우 분), 기혼모로서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 큰 언니 진영(추상미 분) 모두 수현(이병헌 분)에게 빨려들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혈족에 대한 죄의식과 질투심보다는 그 과정 자체의 해프닝을 부각시킴으로써 유교적인 가족논리로 빠질 수 있을 결말을 로맨틱 코미디 답게 풀어낸다.
다만 그 과정은 한 편의 추리영화를 모사한다. 미영과 수현의 데이트 시퀀스를 먼저 보여주면서 프레임이 감추고 있는 씬들을 선영과 진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드러내는 모습은 전형적인 추리영화의 플롯을 따른다.
관객은 프레임에 의존해서 영화를 보며, 프레임을 통해서만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는 특성을 십분 살린 셈이다.

한편으로는 '멋진 남자'의 기준이란 얼마나 상투적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돈 많고, 잘 생긴데다가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는 매너까지! 그것은 중세시대와 산업자본시대, 그리고 현대자본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공통된다고까지 할 수 있는 '왕자님'의 상이다.
그리고 그런 상투성은 항상 '현실'이 아니기에 매력적이다.

여자를 묶고 놓아주는 스킬이 교활할 정도로 대단한 남자 수현. 심지어 남자까지 호모로 만드는 그 능력(puissance?)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과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사랑을 영화 안에서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러브머신이자 섹스머신으로서의 '사랑-기계'인 수현.
그런 남자에게 빠져드는 데에 그 남자가 동생의 연인이냐 아니냐는 후반부에 가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미영이 자기의 사랑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으로 합리화 되지만, 그런 장치를 하지 않고서는 수현이 다른 여자를 찾을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영화의 플롯에 의해) 운까지 좋은 남자가 된 것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여자들의 은밀한 비밀을 소록소록 밝힌다는 컨셉으로 다가간 것이 분명하다. 오르가즘을 지식으로 밖에 독해할 수 없던 선영이 섹스의 주체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가족을 위해 욕망을 억압하는 진영이 수현에게 몰입하는 모습은 여성의 성의식을 프레임에 집중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와의 접경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낸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선영의 어설픈 섹스 연습은 사춘기 소년의 그것과 같고, 미영 가족의 남동생이 수현의 도움으로 '심을 보는' 상황연출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수현의 존재 자체가 다분히 남성적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왕자님'은 단순히 여성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다. 여성에게 '왕자님'은 자기 욕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지만, 남성에게 있어 '왕자님은' 자기 욕망 그 자체다.
또한 수현은 권력자/지배자다. 미영과 선영, 진영은 각자 수현 한 사람을 만나지만, 수현은 진영, 선영, 미영 세 자매를 모두 만난다. 자매가 수현과의 기억을 파편화된 상태로 수현과 공유한다면, 수현은 세 자매와의 해프닝을 '독점'한다. 지식과 정보의 독점은 곧 권력의 독점임을 상기할 때, 수현은 세 자매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수현과의 만남을 희구하지만, 남성들은 수현 그 자체가 되길 욕망한다. 수현은 수현이 될 수 없는 남성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영화답게 수현은 그런 마스터베이션으로서의 존재를 '사랑의 메신저'나 '비밀을 몰래 전파하는 착한 악마'로 나타남으로써 은폐한다. 드러냄으로써 그 존재를 은폐하는 무의식처럼.
그것은 영화 안에서 수현의 속내를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암시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남성이 꾸는 꿈이다.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몸을 재단한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성의 주체로서 드러났지만 사실 대상으로서의 존재를 은폐당한 여성.
관객들은 영화가 순간순간 쳐낸 대사의 오묘함에 웃어댔고 나 역시 그에 동참했다. 어딜 보아도 뚜렷이 여성을 비하하지도 남성을 추켜세우지도 않은, 적당히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수현은 처음부터 미영과 그 가족을 노리고 등장했으며, 그들에게 은밀한 비밀을 선물함으로써 가족의 유대는 더욱 공고해진다.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따른 셈이다. 물론 그 '행복'이라는 것은 영화가 제시하는(bon sens) 행복일 뿐이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 수현이 관객을 향해 짓는 미소를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게임'. 한 가족을 아무 이유없이 살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때론 파격적으로 그린 그 영화에서 살인범(역시 남자다) 역시 관객을 향해 웃음짓는다.
수현의 미소와 살인범의 조소에 어떤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p.s 이 영화에서는 이병헌보다는 최지우가 더 눈에 띈다. 최지우는 비련의 여인 따위보다 그런 어리버리한 역이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사고임을 배제할 수 없다고는 해도.
또한 추상미의 '어른'연기는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Traumfabri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촌평 1  (10) 2008.06.16
추격자  (2) 2008.02.22
The Golden Compass  (5) 2007.12.26
말년 스톰트루퍼  (4) 2005.04.08
우메쯔 야스오미의 'Mezzo'  (1) 200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