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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The Golden Compass

by parallax view 2007. 12. 26.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그러니까 토요일 날 밤새 보드게임 Lupus in Tabula를 하고 대략 4시간 정도를 잔 뒤, 일요일 날 살짝 잠이 덜 깬 상태로 신림에서 동생 부부를 만나 회를 먹으며 소맥 두세 잔 하고 나서 저녁에 신도림 CGV에 가서 황금나침반을 봤습니다.

동생이 영화 뭐 보고 싶냐는 말에 덥석 "황금나침반 보고 싶어!" 라고 말해버린 주제에, 부족한 잠 조금, 많이 부족한 알콜 분해능력 조금 덕분에 영화 중간에 좀 자버리고 만 덕분에 내용파악은 상당부분 못 해버렸지만 말이죠. =_=;;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중간중간 느껴지는 바는 있더군요.

1. 대니얼 크레이그 연기 잘 하더라.
좀 더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연기를 잘 한다기보단 중후한 학자 역이 나름 어울렸다고나 할까요. 특히 초반부에 라라와 다투는 모습에서 혁신적이고 파격적이지만 자기 아이에겐 완고하고 보수적인 '어른'의 연기가 제겐 괜찮게 닿았습니다.

2. 니콜은 역시 악역이 어울려.
요부(妖婦)라면 역시 니콜 키드먼이죠. 살짝 나긋나긋하면서도 비수를 입술 깊숙히 감출 법한 이미지로는. 솔직히 후반부에서의 니콜의 행동은 다소 '뻥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3. 아머베어의 인상이 그닥 강하지 않다.
이건 단지 아머베어 뿐만 아니라 집시들도 그렇고, 스코스비 영감(샘 엘리어트)도, 조연들이 그다지 빛나지 않는다는 인상이 듭니다. 왜일까요? 일단 아머베어야 비주얼로 승부하는 녀석들이라 그렇다쳐도(이오렉 버니슨의 목소리 주인이 아깝긴 해도;), 직접 연기하면서 주인공 일행(이라고 해도 돌아다니는 건 라이라 밖에 없지만-_-;;)을 받쳐주어야 할 조연들의 인상조차 강하지 않은 것은?

4. 라이라가 너무 만능이다.
저는 조연들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 건 라이라가 너무 유능(!)하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뭐랄까, 10대 초반의 소녀가, 제 아무리 임기응변에 능하고 매 상황에 능수능란하다 해도, 지나치게 반응이 빠르달까요. 어쩌면 영화화하면서 이야기의 빠른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에 불과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라이라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다거나, 지켜주는 역할들이 제 구실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도리어 라이라가 너무 유능해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샘이나 간달프 같은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잡았는가를 떠올려 본다면 좋은 대조가 될 것 같군요.

5. 매년 겨울을 책임지는 스펙타클 판타지 대작이라는 욕심.
영화를 드문드문 본 탓에 단상 밖엔 떠오르지 않지만, 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뉴라인시네마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겁니다.
절대반지의 영광이여, 다시 한 번! 이랄까요. 물론 황금나침반을 원작으로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 놈의 판타지 장르라는 게 참 지랄 같은 게, SFX만 화려하다고 해서 성공하지도 않거니와, 원작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서사적, 기술적(記述的) 표현'을 '영화적 표현'으로 옮긴다는 건 정말 철저한 재창조를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 '반지의 제왕'이 판타지 영화에 대한 대중의 안목을 확 높여버렸으니, 감독이나 제작자나 제작사나 이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 흥행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때문일까요, 황금나침반에서 보여지는 건 반지의 제왕에서 쓰였던 스펙타클한 연출의 축소재생산(반지의 제왕에서 모리아 산맥을 비추는 씬에서 정말 한 발자국도 안 벗어나더군요)이고, 아동용 판타지 컨셉도 괜찮았지만 해리포터의 영향력도 너무 고려했고, 그 탓에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 유통사조차 반지의 제왕을 끌어들이는 마케팅을 했으니, 이래저래 이 작품은 고전(苦戰)을 예상하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6. 나에게도 데몬을 주세요.
이래저래 비판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볼만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꼭 이야기하는 '데몬'. 이미 먼 옛날에 반프레스토에서 슈퍼로봇대전 오리지날 캐릭터들에게 '패밀리어'라는, 캐릭터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동물 모양의 수호신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고, 서구에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녀들의 패밀리어 전설까지 가겠지만 어쨌든 이 데몬의 표현이 꽤 미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유소년기의 데몬에 대한 묘사가 무척 개연성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성격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잘 포착해낸데다, 사실 넘흐 귀엽기 때문에...=_=;;; 특히 스코스비 영감이 데리고 다니는 토깽이가 대략 마음에 들었답니다.


덧) 생각해 보면 라이라 이 녀석은 존재 자체가 절대반지 같은 녀석 같습니다. 물론 절대반지 격인 황금 나침반이 있긴 하지만, 황금 나침반에겐 절대반지 같은 교활함이 없잖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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