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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 2 - 철학·역사·문화편

by parallax view 2010. 10. 25.
『그람시의 옥중수고 2 - 철학·역사·문화편』(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 거름, 1999)에는 교육 분야, 이탈리아 역사, 철학 일반과 맑스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람시의 논평이 담겨 있다. 문화 이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보다 더욱 심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사변적인 내용이 많고 이탈리아 근대사-'이탈리아 통일'로 알려져 있는 리소르지멘토(국토 회복 운동)-를 다루고 있어, 읽기가 순탄치만은 않다. 그람시는 파시스트 정권 아래에서 옥살이를 한 탓에 맑스주의나 당 활동과 관련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특정 용어를 감추거나 다른 말로 바꿔쓰는 식으로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하위 주체'subaltern 같은 용어가 태어난 배경이다.

그람시가 걸출한 맑스주의 이론가로서 독창적인 사고를 끌어낼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감옥이라는 건 역설적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 만약 마키아벨리에게 관료 생활과 저작 활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면 그는 기꺼이 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람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위험하고 역동적인 정치 생활과, 단편적이나마 이후에 길이 남을 저작이라는 선택지가 그람시에게 주어졌다면 그 역시 정치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한 뒤, 떠오르는 인상을 적어본다.

1. 지식인은 사회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통치의 하위 기능을 수행하는, 지배 집단의 '대리인'이다.
이상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한다.
(1) 기본적인 지배 집단이 사회생활에 부과하는 일반적인 지도에 대한 주민 대다수의 '자발적' 동의, 이러한 동의는 지배 집단이 생산세계에서의 위치와 기능 덕택으로 누리는 위신(그리고 그 결과 얻게 되는 신임)에 의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다.
(2) 국가기구는 능동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동의하지' 않는 집단을 '합법적으로' 징계하는 강제력을 행사한다. 또한 이러한 국가기구는 자발적 동의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을 때 오는 지배와 지도의 위기의 순간에 대비하여 사회 전체에 걸쳐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식인의 개념에 대한 상당한 확대를 낳게 되지만, 현실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식인, p.21-22)

그람시는 지배 집단의 통치를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강제를 수반하는 '지배'와 동의를 수반하는 지적·도덕적 '지도'다. 거칠게 말해서 그 두 가지의 혼합이 바로 헤게모니hegemony다. 한편, 그람시는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은 이중의 모순을 보인다고 진단하는 듯하다. 지식인은 지배 집단의 헤게모니 구축에 협조하면서도, '지식인 집단'으로서는 다른 사회 세력과 독립된 존재로 상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지식인의 개념을 확장함에 따라 그 경계 역시 사라진다는 걸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럼에도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람시의 입장이다.

그의 입장은 지식인이 떠오르는 '지배 집단', 즉 노동 계급의 입장에서 이들을 지도할뿐만 아니라 노동 계급이 곧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듯하다. 이 '유기적 지식인' 개념에 대한 오해가 지식인의 속류화로 이어지고, 운동권의 잔재인 '공부하지 않는 지식인'(아카데미아의 지적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하고 멸시하는 습관)으로 어긋난 게 아닌가 싶다. 

2. 하위 계급들(subaltern classes)은 정의상, 스스로 '국가'가 될 수 있기까지는 통일되지 않으며 될 수도 없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시민 사회의 역사와 뒤섞여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국가들과 국가 집단들의 역사와 연결된다. (…)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리소르지멘토를 주도한) 이러한 혁신 세력들이 어떻게 하위 집단에서 출발하여 지배 집단으로 발전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① 싸워 이겨야 할 적들과 비교하여 이들이 확보하고 있는 자율성, ②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이들을 지지한 집단들로부터 얻은 지원의 각 단계들을 찾아내고 규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전체의 과정은 그들이 국가의 형태로 통일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단지 이전의 지배 세력들로부터의 분리라는 척도만으로는 그 의식이 측정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이 후자만이 기준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 결과 균형을 상실한 역사가 나오게 된다. (…) 이탈리아 부르주아지는 민중들을 자신의 주위로 통일시킬 능력이 없었는데, 이것이 그들이 패배한 원인이자 그들의 발전을 막는 방해물이었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수고, p.70-72)

'하위 주체'라는 말은 이후 탈식민주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시민사회'라는 말도 그람시에서 비롯했다(이 부분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람시가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대상은 마치니와 그의 '행동당'이다. 지적·도덕적 지도가 부족했다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실제로 '지도'를 수행한 것은 카보우르의 온건당이었다(후일 통일 이탈리아의 국왕이 된 사르데냐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행동당은 나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그람시는 행동당을 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한 반면교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인용문 마지막 문장은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등 '백 개의 도시'가 소(小)부르주아지의 공화국이었고, 이들의 경제적·조합주의적인 경향이 국민국가 형성에 장애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통일국민국가는 공국이나 왕국에 의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군주론』의 문제의식이 역사적으로 재현되었다는 게 그람시의 해석인 듯하다.

3. 제3신분은 자코뱅당의 정력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이러한 '함정'에 연이어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자코뱅은 혁명과정에서 모든 '도중의' 휴지(休止)에 반대하였고,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구 사회의 인자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반동으로 돌아선 어제의 혁명가들까지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 편파적이고 기본적으로 반(反)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주장과는 달리 자코뱅당은 추상적인 몽상가들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자들이었음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평등과 우애와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슬로건이 절대적인 진리임을 확신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으켜 세워 투쟁의 대열로 끌어들인 거대한 인민 대중 역시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자코뱅의 언어와 이데올로기와 행동방식은 새로운 시대의 긴급한 상황을 완벽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그것이 '추상적'이고 '광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한 세기 이상 문화가 더 진화했고 상황이 그 때와 다른 '오늘'의 시점에서 그들을 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수고, p.103)

그람시는 자코뱅이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자코뱅이 혁명의 교과서로 삼은 쪽은 루소보다 마키아벨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람시가 자코뱅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행동당의 지리멸렬함에 있다. 마치니의 화려한 수사는 대중의 요구(토지 분배)에 부합하지 못했고, 행동당은 대중적 기반이 부재한 채 좌충우돌할 뿐이었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의 전통이 러시아 혁명의 볼셰비키에게 이어졌다는 한나 아렌트의 진단을 떠올릴 수 있겠다(아렌트는 자치적인 입헌 공동체의 구축에 성공한 미국 혁명과 그렇지 못한 프랑스 혁명-러시아 혁명을 단적으로 비교하며 전자에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어째서 미국 혁명의 정신이 보편적인 아메리카주의로 확장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4.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가장 흥미롭고 풍부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독일 철학, 프랑스 정치학, 영국 고전경제학 간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실천 철학이 헤겔과 데이비드 리카도를 합쳐놓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서 리카도가 도입한 새로운 방법론적 규범규준(canon)들을 단순한 도구적 가치를 지닌 것(혹은 형식논리학의 새로운 부분)으로 간주해야 옳은가? 아니면 철학적 혁신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가? 경제학의 기본 개념인 경제인(homo oeconomicus)과 '규정된 시장'(determined market)에 대해 과학적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경향의 법칙'(law of tendency)이라는 형식논리적 원리의 발견 역시 인식론적 가치의 발견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 법칙은 새로운 '내재', '필연성'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 등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이러한 용어들로 해석해 낸 것은 실천 철학의 업적이라 생각된다. 요컨대 실천 철학은 리카도가 발견한 원리들을 역사 전체에 관한 적절한 양식으로 확장시키고, 그로부터 독창적 형태의 새로운 세계관을 도출해 냄으로써 리카도의 발견을 일반화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p.261-262)

'실천 철학'은 맑스주의를 말한다. 맑스주의가 독일 고전철학(헤겔), 영국 고전경제학(스미스, 리카도), 프랑스 정치학(자코뱅 전통과 '공상적' 사회주의)의 종합이라는 분석은 레닌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요소』로 정식화되었다. 그람시는 이들을 단순히 '분류'하는 일체의 작업에 반대해, 맑스주의가 근대 과학의 유기적 종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이를 '내재'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듯하다.). 여기서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으로 상징되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논리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5. 우리는 『대중 독본』의 저자가 얄팍하게 말의 승리를 얻기 위해-왜냐하면 실질적인 승리가 무엇인지는 말하기 매우 어려우니까-적의 옹호자 중 가장 약한 자들과 적의 입장 중 가장 약한 것들(또는 가장 연약한 옹호자들이 가장 부적절하게 주장한 것들)과만 싸움을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전선과 정치·군사적 전선 사이에는 형식적이고 비유적인 것 이상의 유사성이 있다는 환상이 (『대중 독본』에는-역주) 만들어져 있다. 정치적·군사적 투쟁에서는, 가장 저항력이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것이 가장 강력한 부분을 최대의 힘으로 공략하기 위한 올바른 전술이며, 최대의 힘이란 바로 보다 약한 부속물들을 제거하는 데서 획득된다. 정치적·군사적 승리는 어느 정도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전략적 목적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영향력을 통해 결정적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전선에서 부속물들이나 조무래기 부관들을 물리치는 것은 하찮은 중요성밖에 갖지 못한다. 이 전선에서는 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과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문과 책이 혼동되고, 일상적인 자질구레한 말싸움과 과학적 저작이 혼동되고 만다. 사소한 인물은 신문의 무한한 논쟁 사례집을 위해 단념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p.301)

그람시는 '대중 사회학적 시도에 대한 비판적 주해'에서 니콜라이 부하린의 『사적 유물론의 이론 :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의 대중 독본』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대중 독본』이 지적 성실함의 부족으로 인해 맑스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을 우려한 게 주된 이유인 것 같다. 특히 그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어떤 사회 질서도 아직 발현될 여지가 있는 생산력이 모두 다 발전되지 못한 채로 소멸해 간 적은 없다. 또 새롭고 한층 높은 차원의 생산 관계도 그것이 현존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반에서 숙성하지 않은 채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는 항상 자신이 풀 수 있는 과제들만을 제기할 뿐이다.")을 종종 인용하면서 부하린이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에서 격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지적하듯이 그람시는 사회학의 범주를 상당히 좁게 잡았고, 그가 표적으로 삼은 대상은 사회학 전반이라기보다 실증주의와 경험주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한편, 볼셰비키 내 우파였던 부하린에 대한 비판을 부하린의 당 내외 영향력 문제와 엮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신경제정책(NEP)을 옹호한 부하린은 트로츠키 추방과 비슷한 시기에 몰락한다(*전기 작가 아이작 도이처는 트로츠키 3부작에서 이론가의 최후를 씁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 독본』을 비판했던 시대는 소련 대숙청(1937-1938년)보다 훨씬 전의 일이었고, 당시만 해도 부하린의 정치적 입지는 단단했던 것 같다. 그람시는 자신의 말 그대로 '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과 싸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적은 논적(論敵)이다. 편집자 주석에 의하면 "레닌은 그의 「유서」에서 부하린은 뛰어난 이론가이기는 하지만 '변증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평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p.234) 인용한 위 문단은 현대의 키워들에게도 유용하지 않을지. (응?)


덧. 『수고 2』를 보면 엥겔스에 대한 주석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반듀링론』의 문구들이 그렇다. "개념을 취급하는 방법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고, 따라서 평범한 일상적인 의식에 부여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실제의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사고도 기나긴 경험적 역사를 갖고 있으며, 더도덜도 아닌 경험적 자연과학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각주 107) 또, 엥겔스는 편지를 통해 맑스주의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 있다. "유물론적인 역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결정적인 계기는 결국 실질적 삶의 생산 및 재생산이다. 마르크스와 나는 이 점 이상을 주장한 적이 없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 주장을 변형시켜, 경제적 계기가 유일하게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경우, 그는 위의 주장을 무의미하고, 추상적이며 불합리한 말로 바꾸어버리는 셈이 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각주 74)

엥겔스에게서 느껴지는 인상은 '과학자'다.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에서 르원틴이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인용했다는데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엥겔스가 당대 과학자 커뮤니티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듯하다. 한편, 엥겔스는 각주 74에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이 하나의 이론을 이해했고, 그 이론의 원리들을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습득하기만 하면 곧바로 아무 어려움 없이 이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많은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이러한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괄목할 만한 쓰레기가 이 구역에서도 나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문제, 각주 123)

덧2. 리뷰에 다 쓰진 못했지만, 과학에 대한 그람시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다.


* 출처가 틀렸다. 아이작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 시리즈가 아니었다.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지젝의 서문에는 부하린이 숙청당하기 전,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가 인용되어 있다. 부하린은 편지를 통해, 만약 자신을 살려준다면 트로츠키에 대한 담론 투쟁을 격정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아내를 인질로 삼으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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