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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엔더의 게임

by parallax view 2010. 10. 7.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오슨 스콧 카드,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2008)은 언젠가 렛츠리뷰 상품으로 올라왔던 걸로 기억한다. 지난 달에 막 재개장한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엔더의 게임』 원서가 어린이 영서 코너에 진열된 걸 보았다. 페이퍼백 버전답게 거친 종이질에 쿼티 타자기로 타이핑된 듯한 글자가 인상적이었다(도통 지저분해서 아무리 애들이라도 어떻게 읽으려나 싶을 정도로.).

띠지에서는 이 책을 'SF·판타지의 컬트 클래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띠지의 수사만 제외한다면 소설은 더 없이 훌륭하다. 이야기의 골격은 단순한 만큼 단단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전개 속도도 빠르다. 무엇보다 엔더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련이 '게임'이라는 설정은 현실과 게임 사이의 역전된 관계-게임은 현실의 모방이지만, 이 세계의 게임은 엔더의 전부다-를 상징적이고 또 실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투 학교의 전술 게임 묘사도 흥미롭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환상 게임이다. 정신분석적인 상징을 남발하지 않으면서 엔더의 내면을 비추고, 더 나아가 다른 존재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해 '성장 소설'에서부터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 서문에서 자신의 작품이 어떤 정치적인 알레고리-파시즘에 대한 반대 같은-로도 해석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작품 역시 군국주의에 대한 반발에 국한할 수 없을 것 같다. "소통불가능하다고 믿어왔던 상대와 소통이 가능하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뒤집으면, 생존 경쟁의 장에서 소통이 가능하냐, 하지 않느냐는 별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작품에 좀 더 가까운 이야기는 영화 <배틀로얄>(2000)일 것이다. 다만 『엔더의 게임』에서는 버거의 침공과 식민지 개척이라는 '탈출구'가 있었지만, <배틀로얄>에는 그런 탈출구조차 없이 또래들과 내전-영화는 입시 지옥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다-에 돌입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른에 의해 꼼짝없이 룰에 갇혀 있을 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엔더는 룰에 철저히 적응하고 그 한계까지 돌파함으로써 오히려 룰에서 벗어난 듯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아이들은 엔더가 아니다. <기동전사 Z건담>의 카미유처럼 "그런 어른 따위 수정해주겠어." 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세대에게 『엔더의 게임』은 오히려 현실의 룰에 충실할 때만 생존할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교과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이 소설에서 시대정신까지 이야기하는 건 좀 과장일 것이다. 그저 작가의 말대로 독자와 작가가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공간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사실 그것조차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인가.


추. 옮긴이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백석윤 씨다. 전작과 『엔더의 게임』 모두 간결한 번역이 눈에 띈다. 특히 『엔더의 게임』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가능한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조숙한 천재들이라 해도 8~12살 사이의 어린애들이 "자네."라던가 "~하게."라고 말하는 데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다. 순간 이야기가 확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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