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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어둠의 심장

by parallax view 2024. 9. 2.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황유원 옮김, 휴머니스트, 2024)은 콘래드 사망 100주년을 기념해 새로 번역한 판본이다. 같은 원서의 다른 번역을 살펴볼 깜냥은 없지만, “과연 시인”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이 또한 선입견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옮긴이의 세심한 번역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콘래드라는, 이른바 ‘세계문학전집’의 세계에 입주한 작가가 왜 지금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소환된 것일까? 그리고 왜 제목은 ‘어둠의 심장’일까? 소설의 내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두 가지다. 전자보다 후자가 좀 더 설명하기 수월해 보인다. Heart of Darkness(1899)의 한국어판은 그동안 《암흑의 핵심》(민음사판), 《어둠의 심연》(을유문화사판), 《어둠의 속》(민족문화사판, 문예출판사판), 《암흑의 오지》(큰글판) 등으로 번역되었다. 옮긴이는 왜 ‘핵심’이나 ‘심연’ 같은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심장’이라는 은유를 썼는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어둠의 심장》을 다 읽은 후 지금도 마음속에, 아니 귓가에 남아 있는 것은 한밤중에 쿵, 쿵 고동치며 들려오는 저 아프리카 숲의 어두운 심장 소리다. 나는 아프리카 숲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심장에 손을 가져간 뒤 눈을 감으면 자연히 그 북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Heart’를 ‘심장’ 말고 다른 단어로 옮기기란 불가능해졌다(229쪽).”

‘어둠의 심장’이라는 번역은 소설이 긴 강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이자 행위자인 말로(C. Marlow)는 증기선을 몰고 콩고강을 거스른다(끝이 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말로는 남성화된 셰헤라자드처럼 보인다). 그와 증기선은 아프리카의 구불구불한 내장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대지에 초목이 만발하고 커다란 나무들이 왕이나 다름없던 태초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여행과도 같았어. 공허한 강물, 거대한 침묵,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숲. 공기는 뜨끈하고 빽빽하고 묵직하고 둔탁했어. 햇빛의 광휘에도 기쁨은 없었지. 길게 뻗은 수로는 지나는 배 한 척 없이 이어지다가 그림자가 드리운 먼 곳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네(81쪽).”

말로가 파고든 아프리카의 내장은 원시의 내장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서평가 정희진이 지적했듯이 《어둠의 심장》은 “근대적 주체, 제국주의 주체의 필연적 분열(233쪽)”을 드러낸다. 말로가 체험한 콩고강과 시간이 지나 사람들에게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낼 때 머무른 템스강이 포개질 때, 아프리카와 영국이, 식민지와 제국이 포개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자는 자신의 내장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둠의 심장’은 새로운 판본의 번역어로 적절하다고 하겠다. 남은 질문은 왜 지금 《어둠의 심장》이 새로 출간되었는가, 콘래드의 여러 작품 중에서 왜 이 소설이 새로 나와야 했는가이다. 문화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정치적 무의식》에서 콘래드의 대표작으로 《로드 짐》과 《노스트로모》를 언급하면서, 그중에서도 《로드 짐》의 분석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제임슨이 주목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둠의 심장》이 별 볼 일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 아니다). 제임슨의 분석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콘래드의 ‘해양 소설’에 있어 그의 문체가 보이는 인상파적인 성격, 바로 모더니즘을 부각한 점이다. 《어둠의 심장》이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모티프라는 것,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읽히고 쓰였음을 생각할 때 이 같은 분석은 너무나 전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대 이론적 담론의 시선으로 봤을 때 시대착오적일 것이 분명한) 제임슨의 시대구분, 즉 리얼리즘/산업자본주의-모더니즘/제국주의-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새로 번역된 《어둠의 심장》은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역사화된 지금, 미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텍스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이 말은 미학을 정치로, 정치를 미학으로 곧장 번역할 수 없음을 전제한다. 여기에는 매개가 필요하며, 여기서 그것은 소설 또는 텍스트다). 《어둠의 심장》이 보여주는 제국주의의 풍경 또는 제국주의의 인상은 역사를 소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장기지속되는 수탈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비록 옮긴이가 《어둠의 심장》을 너무 학술적으로 읽지 말기를 제안하고, 탈식민주의적 주제가 “동양인인 우리에게(231쪽)” 피부에 와닿는 주제는 아니라며 정치적 독해를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하지만(물론 탈식민주의가 “엄숙한 학술 세미나 현장[231쪽]”에서 오르내리는 주제임은 부정할 수 없다), 탈정치적 제스처를 불러일으키는 텍스트의 정치성을 옮긴이가 강조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문체를 통해 읽어내는 쪽이 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새로 읽는 《어둠의 심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운드다. 옮긴이가 강조한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듯이 빽빽한 문체, 어둠에 가까운 문체(227쪽)”는 제국주의란 유령의 제국임을, 제국주의자들이 ‘모험’ 속에서 대면하는 것이란 분열과 공포임을 자백하는, 성마르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닻사슬이 내려가며 들리는 둔탁하게 덜컹거리는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어떤 외침이, 무한한 황량함이 내지른 듯한 아주 커다란 외침이 우중충한 공기 속으로 천천히 솟구쳤어. 그러고는 멎었지. 야만적인 불협화음의 음조로 크게 항의하는 듯한 소리가 우리의 귀를 가득 채웠어.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였기에 모자 아래의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더군.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 소리는 안개 자체가 너무 갑자기 내지른 비명처럼 들렸고, 이 떠들썩하고 애절한 으르렁거림은 사방에서 한꺼번에 울려 퍼진 게 분명했어(94~95쪽).”

무엇보다 말로가 대면을 갈망하면서도 회피하고 싶어 했던 남자(커츠)는 오직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유령이다.

“나는 하마터면 그녀에게 ‘당신은 저 말이 안 들리십니까?’ 하고 외칠 뻔했어. 거세어지는 바람의 첫 번째 속삭임처럼 위협적으로 점점 커지는 듯한 속삭임, 우리를 온통 둘러싼 집요한 속삭임으로 황혼은 그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지. ‘끔찍하구나! 끔찍해!’(183쪽)”

이야기꾼을 위협하고 또 이야기꾼이 독자를 위협하려 동원한 사운드는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인다. 제국주의의 유령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끈덕지게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끔찍하구나!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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