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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놀이와 인간

by parallax view 2015. 9. 23.

『놀이와 인간』(1994, 문예출판사)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을 읽었다. 카이와는 요한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놀이(게임)에 대한 문화연구/비평을 수행한다. 그는 호이징하가 문화의 모태로서 놀이를 주목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경쟁과 흉내(모의)만을 놀이의 형식으로 보고 운과 흥분(현기증)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불충분했다고 지적한다. 


  카이와 스스로 말하듯 '놀이를 출발점으로 하는 사회학을 위하여' 놀이의 성격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이를 통해 문명 일반을 해석하려 한다. 경쟁(아곤agon), 운(알레아alea), 모의(미미크리mimicry), 현기증(일링크스ilinx)의 2x2 조합 중 가능하고 지배적인 조합은 경쟁-운의 쌍과 모의-현기증의 쌍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리고 모의-현기증의 쌍을 원시문명에, 경쟁-운의 쌍을 근대문명에 대입해 설명한다. 이런 분석은 도식화가 갖는 강점과 약점을 전형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의 관점 또한 그대로 보여준다. 분석을 위해 동원되는 동물행태 연구와 인류학/민속지학 자료는 더욱더 '문명화된 유럽인'의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도 여전히 이 책은 『호모 루덴스』와 함께 문화연구의 고전일 것이다. 놀이에 대한 문화비평이자 놀이를 통한 문화비평을 욕망하는 이라면 읽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 같은 게임문화비평도 간혹 출간되지만, 그 영역은 컴퓨터게임에 한정되고 일종의 백과전서적인 작업으로서 놀이문화연구는 한국에서 아직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게임은 그나마 산업적인 이유 때문에 주목이라도 받지만, 혹자의 표현을 빌어 '즐거움을 비난하는' 우리 문화, 고도경제성장을 위한 노고에 길들고 '노오력'에 굶주린 우리에게 놀이문화연구는 꽤 먼 일로 느껴진다. 



추. 구소련에서는 도박과 복권을 금지하지만, 은행의 예금자에게는 이자 대신 제비뽑기에 참여할 권리를 준다는 기록이 『놀이와 인간』에 나와 있다(이 책의 초판은 1958년에 출간되었다). 말하자면 은행에서 이자 대신 복권을 주는 셈이다. 카이와는 이를 어떤 문명에서든 놀이의 요소가 항상 존재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한다. 내게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에게 금융이란 무엇이었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자료였다.


  브라질에서는 도박이 최고이며 저축은 극히 미미하다. 브라질은 투기와 운의 나라이다. 소련에서는 우연놀이가 금지되고 박해받는 한편, 국내시장의 확대를 위해 저축이 활발하게 권장되고 있다. 자동차, 냉장고, 텔레비전 수상기 등, 공업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을 충분히 살 수 있을 만큼 절약하도록 노동자들을 부추기고 있다. 복권은 어떤 형태를 취하더라도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인에게 복권을 금지시키고 있는 국가가 그 복권을 바로 저축 자체에 접목(接木)시켰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소련에는 약 5만 개의 저축은행이 있는데, 그 예금액은 500억 루블에 달한다. 이 예금에는 적어도 6개월 동안 인출하지 않으면 3%의 이자가 붙고, 6개월 이내에 인출하면 2%의 이자가 붙는다. 그러나 예금자가 원할 때에는 예정된 이자를 포기하고 제비뽑기에 참여할 수 있다. 추첨은 연(年) 2회 행해지며, 예금액에 따라 다른 상금이 1000명당 25명의 당첨자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알레아를 추방하기 위해 고안된 경제에서, 이처럼 기묘하고 조심스럽게 재용출(再湧出)한 알레아에 참가해서 상응하는 공적(功績) 없이 불공평한 보상을 얻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임금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랫동안 사실상 강제적으로 구입한 국채(國債)에는 장려금이 붙는데, 그 총액은 이렇게 해서 모은 가동자금(稼動資金)의 2%를 차지하였다. 1954년의 국채(國債)에 대해 말하면, 이 장려금은 각각의 조(組)가 50매의 채권으로 이루어지는 10만 개의 조(組)에 대해서 400루블에서 5만 루블까지의 당첨금으로 분배되었다. 이 10만 개의 조 중에서 42개의 조가 추첨으로 뽑혀, 이들 조를 구성하는 모든 채권은 최소한 400루블의 상금을 받았다. 이어서 이보다 더 많은 상금의 추첨이 행해졌는데, 이 중에는 만 루블이 스물네 번, 만오천 루블이 다섯 번, 5만 루블이 두 번 추첨으로 결정되었다. 이것은 각각 공식시세로―하기야 루블이 과대평가되었지만―백만 프랑, 250만 프랑, 500만 프랑의 당첨에 상당한다. (230~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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