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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by parallax view 2013. 4. 19.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류현 옮김, 김수행 감수, 실천문학사, 2012)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 파헤치는 체 게바라를 두고 국내 서평꾼들은 "경제 관료로서의 체 게바라" 혹은 "정치경제학자로서의 체 게바라"에 주목하는 듯하지만, 나는 "경영자로서의 체" 혹은 "경영학자로서의 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체가 국가를 하나의 공장, 즉 기업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모든 물적, 인적, 지적 자원을 전략적으로 동원하고 배치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그 우파적 버전을 이명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저자 헬렌 야페는 쿠바 혁명 이후 체가 1959~1964년 사이에 국립은행 총재, 국립농업개혁원 산하 산업화부(산업부흥부) 부장, 산업부 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구상하고 실행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면면을 아직도 살아 있는 당시 실무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전달하고 있어 "계획경제의 실상"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체에게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구 소련의 자율재정시스템(AFS)과 달리, 예산재정시스템(BFS)을 제안하고 실행함으로써 가치법칙(자본주의)을 줄여나가면서 노동의 생산성과 대중의 의식 변화를 동시에 끌어올리고자 했다는 데 있다. 야페에 따르면 자율재정시스템이 기업들의 재정 자율성을 인정해 기업별 투자와 이윤 확보, 신용 제공 등을 보장했다면, 예산재정시스템은 기업들을 기업소 단위로 묶어놓고, 이윤이 아니라 비용 절감을 경영의 목표로 설정하며, 노동자에게 물질적 인센티브보다 자부심과 같은 "도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회주의 블록과 다른 실험을 하고자 하는 체의 의도를 반영한다. 산업을 국유화해 예산과 재정을 중앙집중화하되, 생산과 운영은 분산하려던 시도는 성공적이기는커녕, 체의 죽음과 미국의 경제봉쇄 등으로 계속 오락가락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쿠바는 국유화와 계획경제라는 과제를 기꺼이 떠안았고, "이자 낳는 자본"을 비롯한 가치법칙에 대항하며 생산성을 향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선례를 제공한다. 사회주의 경쟁과 자발적 노동을 통해 노동자 대중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자 했던 시도는 오늘날 한국 협동조합들의 모토인 "착한 경제"나 토닥토닥 협동조합 같은 청년공제조합이 제안하는 "토닥이 씨앗"과 흡사하다. 체와 쿠바의 실험을 국가 사회주의와 동원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혁명가는 왜 그리고 어떻게 국가 운영 전략을 짜야 하는가를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체는 미국 독점 자본의 경영기법에 주목해 예산재정시스템을 제안했는데, 테크닉의 "이데올로기적 오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너무 순진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푸코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체의 시도 역시 다른 사회주의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통치 프로그램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체와 쿠바의 시도는 다시 푸코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주의 통치성"을 찾아보려는 여정은 아니었을까. 


덧붙여 자동화에 주목한 체와 마찬가지로 아옌데 정부 시기의 칠레에서 "사회주의 인터넷"이라 불리는 사이버신 프로젝트(사이버네틱스 이론에 기반한 생산-유통 시스템)가 기획되었음을 떠올려 볼 때, 남미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와 동유럽의 사회주의자들보다 기술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체와 아옌데의 시도 모두 그 잠재력을 미처 실현하지 못한 채 계획에 머물거나 철회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미국의 앞마당으로서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던 남미의 정세에, 미국 독점 자본의 선진적인 경영 기법을 신(新)식민지적 상황에서나마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추. 내가 체 게바라를 "경영자"라고 부른 이유는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 예산재정시스템, 즉 경영 기법이라는 점에 있다. 책에서 체의 동료들로 자주 언급되었고, 주요 연구 참여자이기도 한 사람들 모두 혁명가이자 회계사들이었다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지배나 사업을 대신하는 말이 된 "경영", 바로 경영이 문제다. 경영학을 무시하지 말자. 오히려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는 경영 담론과 테크닉의 통치성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경영학 따윈 학문도 아니야" 같은 말이 왜 그토록 무력한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