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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며칠 간의 독서 노트

by parallax view 2019. 12. 16.

12월 7일 토요일

아서 쾨슬러, 문광훈 옮김, <한낮의 어둠>, 후마니타스, 2010.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반공주의 소설의 계보에 포함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볼셰비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추적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고참 볼셰비키의 심리학'에 더 가깝다. 저자는 박노자의 표현을 빌자면 '카우츠키의 제자들'인 볼셰비키가 기계적인 진보주의에 포박되어 있음에 탄식한다. 그와 더불어 당과 혁명국가의 방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고참 볼셰비키의 희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기독교적 주제로 변주하면서 세계의 변혁과 '대양적 감정'의 융합을 꿈꾸는 인간주의적 공산주의를 희망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에서 묘사한 1960~1980년대 구소련의 젊은 공산당원이 상상했던 '스탈린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레닌주의'라는 환상과, 세련된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사이 어디쯤에 놓인 듯하다.

 

12월 9일 월요일
야콥 타우베스, 문순표 옮김, <서구 종말론>, 그린비, 2019.
이 책은 우리에게 <바울의 정치신학>으로 소개된 타우베스의 청년기 저작이다. 저자가 혁명적 열정이란 종말론적 열정이라는 것을 역설할 때마다 결기가 느껴진다. 여기서 종말론은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감각, 이토록 부정한 세계는 지금 당장 무너져야 한다는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타우베스의 글에는 하이데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로 시작해서 같은 책으로 끝난다.) 타우베스가 헤겔의 변증법에서 마르크스와 키르케고르의 분기를 해설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 둘의 합일(부정의 부정)을 긴급히 요청할 때, 그는 극좌와 극우 사이에서 격렬히 진동하는 듯하다. (하이데거의 세례를 듬뿍 받은 마지막 문단에서는 오른쪽으로, 즉 키르케고르 쪽으로 좀 더 다가가는 것 같다. 또한 청년 타우베스가 예의 '청년 마르크스'에 경도되어 '소외'를 통해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데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의 피상적인 이해를 드러낸다.) 다만 종말론 연구를 종말론적 희망으로 종결하는 데서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만난 '묵시가' 타우베스를 거듭 확인한다.

<서구 종말론>은 초기작인 만큼 타우베스와 그의 종말론 해석을 이해하는 하나의 이정표에 머문다. 그럼에도 종말론은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사유다. 신유물론과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는 지금 시대의 신학을 파악하기 위해 하이데거를 탐색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련해 에티엔 발리바르가 쓴 <종말론 대 목적론: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유예된 대화>(<알튀세르 효과>에 수록)와 진태원의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가 좋은 참고가 되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반反목적론과 데리다의 반反종말론을 서로 포개놓으며, 진태원은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적 힘'과 데리다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메시아성)' 사이의 차이를 하마허 등의 논의를 경유해 살펴본다.) 타우베스가 칼 슈미트와 나눈 서신과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나눈 서신이 번역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낯설기 그지없는 20세기 초의 문헌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인용하는 <서구 종말론>은 번역하기 어려운 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건 아쉽다. 풍부한 주석과 해설이 고마울 따름이다.

12월 14일 토요일
정소연 외, <오늘의 SF #1>, 아르테, 2019.
SF 무크지 <오늘의 SF #1>을 읽고 있다. 지금이 과연 '한국 SF의 르네상스'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SF 전문지가 반가울 따름이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려면 그 이전의 '리즈 시절'이 있어야 한다. 써놓고 보니 부당전제다.) 김이환의 초단편 <친절한 존>과 박해울의 단편 <희망을 사랑해>가 좋았다. 듀나의 사변적인 단편 <대본 밖에서>도 인상적이다. 김초엽의 단편 <인지 공간>은 앎을 향한 헌신과 이단적인 사유의 고독을 서로 다른 운명의 두 여성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갈등이 충분히 서사화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김창규의 <복원>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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